오빠와 함께 오른 산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설 연휴 중 남편은 상갓집으로, 나는 둘째 오빠네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연세도 많으신데다 병마와 싸우느라 허약해진 오빠를 생각하면 아려오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뵈러 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며 애써 추스른다. 큰오빠가 돌아가시고 논의 끝에 셋째오빠에게 옮겨간 부모님의 제사. 아버지는 설날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친구 분들은 자손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가족들이 모이는 설날에 맞춰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제사를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여기는 둘째오빠가 병환으로 함께하시지 못한 것이 3년째, 부모님께 술 한잔 따라드리지 못하고 멀리서 마음으로만 잔을 올리는 오빠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또 울컥해진다. 외출도 어려우신 편이라 사람이 그리우실 텐데, 연세 드실수록 형제가 보고 싶지 않겠나 싶어 막내오빠네 가족까지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는 셋째오빠네 대신 둘째오빠를 뵈러 갔다. 하나 밖에 없는 막내여동생을 맞이하는 오빠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오빠 앞에서만 서면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어린아이처럼 몇번이고 지난 시절의 추억을 들추어내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으신가보다. 함께 오른 길 아침이 되었다. 오빠에게, 잠시 그리 멀지 않은 산소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린 것이 문제가 됐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오빠가 함께 가시겠다고 하셨다. 화장실 출입조차 가까스로 하시는 몸으로 산소에 가시겠다고 하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도 가지 않겠다고 주저앉았지만 오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하셨다. 알고 보니 오빠가 산소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게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오는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에 계신 것도 아니고, 차가 들어가지 않는 산 속에 산소가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몸으로 산소에 가고 싶어하는 오빠의 간절한 마음을, 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조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너무도 당연하다. 벌써 몇 년째 집에서 간병하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애쓰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온전히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하니 새언니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이 차는 많지만 한 공간에서 같은 감성을 느끼며 자란, 한때는 매일 아버지의 산소를 산책 삼아 오르던, 마음의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 용기를 얻었던 경험을 공유한 나밖에 없는데... 이행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한참의 망설임과 논의 끝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일단 나서기로 했다. 가다가 포기하더라도 한번은 최대한 하는 데까지 노력해 봐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끝까지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으니 돌아가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느끼고 당신 스스로 포기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요까지 두툼하게 챙겨 들고 조카 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얼마나 갔을까,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조카가 우리를 불렀다. 마침 누나집을 방문하러 오던 새언니의 동생이 이 모습을 보고 따라오신 것이다. 오빠를 차에 태우고, 휠체어를 실었다. 어디까지 가든 지원군이 한 분 늘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산으로 접어들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낙엽이 쌓인 산길로 오빠를 모시고 가기는 쉽지 않았다. 슬며시 포기하시길 종용하며 더 가실 수 있겠냐고 여쭈니 가시겠단다. 하긴 여기서 말 거였으면 나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오빠는 지팡이를 잡았다. 양쪽에서 오빠의 팔을 끼고 산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었다 살짝 녹아 푹신하게 낙엽이 쌓인, 그래도 나뭇잎들이 무성하지 않아 다행인 길을 내가 앞장서 터주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