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나? 이러다가 진짜로 내전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요즘 미국발 뉴스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 아닐까 싶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목으로 영장 없이 가택에 침입하고, 복면을 한 연방 단속 요원이 비무장 시민을 대낮에 처형식으로 사살하고, 5세 아이를 미끼로 쓰는 체포 작전을 벌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이제 일상이 됐다. 많은 이들이 이 현상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 이면에는 미국에 대한 신뢰를 쉽게 놓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건재하고, 트럼프가 사라지면 혼란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미국 정치제도에 내재한 허점들이 축적되고 결합한 산물이다. 건국 때부터 존재한 균열, 정교분리 원칙과 현실의 괴리, 연방제와 선거제도의 구조적 편향이 맞물리며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백인 인종주의와 결합한 개신교 복음주의가 이 허점들을 반세기에 걸쳐 조직적으로 활용해 왔다. 이 위험한 역사적 궤적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 복음주의와 뿌리를 같이하는 한국 개신교계의 정치화를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종교의 자유가 종교에 의한 지배로 미국은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이 정교분리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건국 때부터 시작됐다. 1776년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선언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남부에는 수십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있었고, 건국의 아버지들 상당수가 노예 소유주였다. 이 간극을 정당화한 것이 백인 교회들이었다. 남부 개신교 목사들은 흑인의 열등성이 신의 뜻이며 노예제는 성경이 허락한 질서라고 설교했다. 미국 최대 개신교 교단인 남침례회 가 1845년 노예제 옹호를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 결합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백인 교회들은 약 100년간 인종 분리 체제를 신의 질서로 정당화했다. 법이 바뀌어도 교회는 늘 차별의 편에 섰다. 1960년대 민권운동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971년 연방정부가 인종 차별 정책을 유지하는 사립학교의 면세 혜택을 박탈하고,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자,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종교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며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 정교분리 원칙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순간, 종교의 자유가 정치 개입의 명분이 됐다. 종교를 정치로부터 분리하려는 원칙이, 종교로 정치를 장악하려는 시도의 정당화 논리로 뒤집힌 것이다. 1980년 대선은 그 전환점이었다. 매주 교회에 나가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독실한 남침례회 신자 지미 카터 대신, 이혼 경력이 있고 교회에 거의 출석하지 않는 로널드 레이건을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선택했다. 카터는 인종 평등과 여성 권리를 옹호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존중한 반면, 레이건은 낙태 반대, 학교 기도 부활, 전통적 가족 가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앙심보다 정치적 입장이 중요했다. 이후 양극화는 심화됐다. 여성 권리, 성소수자 권리, 다문화주의가 확산되자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선과 악의 대결로 재구성하며 문화 전쟁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복음주의의 의미 자체가 변했다. 교회에 나가느냐가 아니라 공화당을 지지하느냐가 복음주의자의 기준이 됐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