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5년 전인 1931년 2월, 동양계 이민자 청년이 미국에서 영문으로 쓴 소설을 발표했다. 식민지 조선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청년 시절 3·1 운동을 겪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기까지의 이야기를 2부 24장에 걸쳐 담은 자전적 이야기로, 제목은 더 그래스 루프(The Grass Roof)였다. 한국어 제목은 <초당(草堂)>이다. 우리의 전통 서민 가옥인 초가를 이르는 말로, 사육신 유성원의 시조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 강용흘(姜鏞訖)은 주인공 한청파와 주변 인물들을 내세워 따뜻한 조선인의 심성과 계절 변화에 따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소박한 삶이 일본의 침략과 수탈로 황폐해지는 과정도 함께 보여주며, 왜 조선인들이 독립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초당>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우리나라의 생활 양식과 전통 세시풍속을 소개하는 한편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 윤선도의 시조 '어부사시사', 한용운의 '고적한 밤' 등 우리 고전 시가와 현대시를 수십 편 인용해 놓았다. 동아시아 작가 최초로 영문 작품 발표 <초당>은 동아시아 작가가 미국에서 처음 영문으로 발표한 문학 작품이었다. 식민지 조선인이 최초라는 영예를 안은 것도 의외지만, 출판 후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뉴욕타임스> <뉴욕헤럴드트리뷴> 등 유력 신문과 잡지들이 앞다퉈 서평을 실었고, '금세기의 책'으로도 뽑혔다. <뉴욕헤럴드트리뷴>은 "가장 가치 있는 인간 기록"이라면서 "조선의 아름다운 시가를 더 많이 소개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뉴욕타임스>는 "젊은 조선 망명가의 이 작품은 중국과 일본 문학에 치욕을 안겼다"라고 꼬집었고, <뉴리퍼블릭>은 "조선에 관해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라고 평가했다. <초당>을 출판사에 소개한 뉴욕대 동료 강사이자 소설가 토머스 울프는 <뉴욕포스트>에 "타고난 작가로 어디를 보나 자유롭고 박력이 넘친다"라고 극찬했으며, 영국 문학평론가 리베카 웨스트는 "영국의 예이츠나 인도의 타고르에 버금가는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낭보는 고국에도 전해졌다. 뉴욕대 대학원에 다니던 한보용은 1931년 4월 22일 자 <조선일보>에 '강용흘 군의 영문 소설 뉴욕에서 발행 격찬'이라는 제목 아래 출간 소식과 함께 줄거리, 현지 언론 평가, 작가 약력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작가는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해 나와 몇 번 논쟁한 적 있으나 이 작품은 민족 본위의 인본 예술로 민족전선의 일익 임무를 다하고 있다"라는 감상을 털어놓았다. 이광수도 독후감을 <동아일보> 1931년 12월 17일과 18일 자에 두 편으로 나눠 실었다. 재미와 유머를 높이 평가하며 '작가적 역량'을 인정한 뒤 "그 이상의 대작을 내어 조선과 조선 민족의 이름을 빛내 달라"고 기대했다. 강용흘의 불운은 펄 벅의 <대지>가 바로 다음 달에 선보인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서점 주간 집계에서 나란히 논픽션과 픽션 부문 1위에 올랐던 두 작품은 1932년 퓰리처상을 놓고 경쟁했으나, 최종 승자는 <대지>였다. 만약 <초당>이 퓰리처상을 받았다면, 강용흘은 2024년 역사소설 <주인 노예 남편 아내>의 우일연보다 무려 92년 앞서 한국계 작가로서 퓰리처 예술 부문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대지>를 스크린에 옮겨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 메이저사 MGM은 <초당>도 영화화를 검토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등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한국어로는 1948년 김성칠이 제1부만 번역했다가 1975년 장문평이 완역했다. 3·1운동으로 고초 겪고 유학길에 올라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