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정도, 나는 진료실을 벗어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향한다. 가기 전 내가 읽어내야 할 많은 서류는 단순한 행정 문서나 의무기록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들은 누군가가 수십 년간 일하며 흘린 땀방울이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견딘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다.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의사로서 내가 수행하는 역할은, 이 환자의 질병이 업무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운명' 때문인지를 평가하여 가려내는 것이다. 회의 후 내려지는 업무상 질병에 관한 승인 혹은 불승인으로 누군가는 치료비 걱정을 덜고 업무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다른 누군가는 본인의 고통이 외면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생계 유지와 같은 차가운 현실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로 인한 환자의 고통은 아마도 질병으로 인한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일 것이다. 과학적, 의학적 지식은 완벽한가? 이러한 탓인지 나 역시 업무상질병 판정과 관련된 중압감을 자주 경험한다. 이와 같은 무게감 아래에서 내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오늘, 내가, 근거로 든 의학적 지식은 절대적인 것인가?' 질문과 동시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이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적 진리란 절대 불변의 법칙이라기보다 반증되지 않은, 수정 가능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간 보아온 모든 백조들이 흰색이라 하더라도 '모든 백조가 흰색이다'라는 가설은 참이 아니다. 어느 날 검은 백조가 발견되는 순간, 이 가설은 무너진다. 따라서 언제든 틀릴 수 있는 것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과학을 더 과학답게 만든다고 포퍼는 말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과학적 근거라고 부르는 현재의 의학적 근거들은 사실 완벽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발견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전에는 직업병이라 상상할 수도 없었던 질환들이 새로운 역학 조사와 연구를 통해 직업병으로 인정됨도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교과서나 논문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유해 물질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과학적 근거의 변화는 언제나 현장의 속도에 비해 늦다. 이러한 지점에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라는 과학적 정직함과 '이 사람은 분명 일 때문에 아픈 것 같다'라는 임상적 직관은 자주 충돌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