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령은 1988년 구로구 오류여중에 입학했다. 중학교 1, 2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였다. 따로 '운동'을 한다기보다, 그냥 그 시절의 학교 분위기 속에 깊이 휩쓸려 들어간 학생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오류여중에서 '전교조 교사 지키기 활동'을 하고 고척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안팎에서 고등학생 운동(고운)을 한 성희령씨를 지난 1월 20일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특별히 뭘 주도해서 했다기보다는, 담임 선생님이 전교조셨고, 오류여중에 해직 교사가 워낙 많았어요. 해직 교사들이 학교 앞에서 출근 투쟁하는 걸 매일 봤고요." 전교조 결성, 해직, 출근투쟁 이라는 1989년 한국 사회 전체가 출렁이던 그 흐름은 오류여중 교문 앞에도 그대로 와 닿았다. "국사 선생님이 해직되실 때였어요. 저희가 그 선생님 마지막 수업 시간에 종이비행기를 창문 밖으로 날렸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실 때, 창문마다 종이비행기가 훨훨 날아갔거든요." 해직 교사들이 나가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임시 교사가 들어왔다. 학생들은 어린 마음에, 그 선생님에게 수업 거부라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 선생님 수업 시간에 아예 안 쳐다봤어요. 엎드려 있거나, 딴짓하거나… 몇 주를 그렇게 했죠. 결국 선생님이 울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나도 그 선생님이 해직된 게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우리가 수업을 다시 듣기 시작했어요." 오류여중 전교생은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녔다. 해직 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이었다. "리본 떼라고 뭐라 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대부분 끝까지 달고 다녔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다'라는 생각이였죠. 서명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요." 오류여중은 당시 전교조 투쟁의 상징적인 학교 중 하나였다. 학내 대책위 구성, 집단 서명, 시교육위 진정, 그리고 거리 시위까지 이어졌다. 그는 1989년 8월 17일 가두시위 기록에 대해 "아마 그날은 내가 안 나갔나 보다, 잘 기억이 안 난다"며 웃었지만,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해직 교사들과 학교 쪽이 몸싸움을 벌이던 장면 만큼은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수업 시간인데도, 교문 앞에서 선생님들하고 교장·교감, 관리자들이 밀고 당기고 하는 모습이 교실 창문에서 보였어요. 그게 되게 충격이었어요. '선생님이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라는 게." "우리가 뽑은 반장은 '노는 언니'였다" 성희령이 지금도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담임 이기자 선생님이다. "중학교 1학년 첫 학급 회의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학급 회의를 너희가 진행해봐라', '반장도 너희가 후보 내고, 스스로 뽑아라'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보통은 선생님이 후보를 정해주잖아요." 그 반에는 한 살 많은, 이른바 '노는 언니'가 있었다. 학생들은 토론 끝에 그 언니를 반장으로 뽑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