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현관문 밖까지 웃음소리가 넘쳤다.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회의가 한창이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강신석 목사의 가족이 내어준 이 공간에서, 이들은 오는 26일 열릴 창립총회를 앞두고 1박 2일 워크숍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해 당사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가까지 열매 집행부 7명이 모여 총회 당일 식순과 업무 분장, 치유 프로그램 준비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다. 무엇 하나 편하게 정해지는 법이 없었고, 식탁에 둘러 앉은 이들은 연신 머리를 맞댔다. 이들의 중심에는 성폭력 피해 증언자이기도 한 김복희 열매 대표가 있었다. 이들의 뜨거운 논의는 이제 막 공식 단체로 피어나려는 열매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7명이라는 한정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아직은 할 수 없는 일이 차츰 정리되기 시작한 것. 피해자 15명과 집행부 7명을 넘어 어떻게 연대자들과 시민들로 열매의 동심원을 확장할 수 있을지, 그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질문이었다. "5·18 성폭력 피해를 겪어야만 열매인가?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는, 연대자들은 또 열매가 아닌가? 이런 질문들 속에서 창립을 앞두고 모든 회원과 함께하고자 한다." - 윤경회 열매 간사 회의 직후 열매의 김복희 대표(5·18 성폭력 피해자)와 윤경회 간사(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팀장)를 인터뷰했다. 자조모임에서 단체로 거듭나기까지 열매는 2024년 8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조 모임으로 출발했다. 극심한 낙인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40년이 넘도록 서로의 얼굴도, 생사 여부도 몰랐다. 그러다 그해 4월 처음으로 얼굴을 확인하고는 부둥켜안았다. 그곳에서 이들은 피해 회복의 씨앗을 발견했다. 김복희 대표는 자신처럼 피해를 겪은 여성들을 대면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조 모임에서 출발한 열매를 지켜본 이들은 창립총회까지의 시간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5월, 김선옥씨가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용기를 얻어 실명과 얼굴을 내걸고 5·18 성폭력 피해를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5·18 진상규명법'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발생 등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 포함됐고, 2023년 12월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의해 5·18 성폭력 피해가 공식 인정됐다. 이를 토대로 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윤경회 간사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4과 3팀장으로서 5·18 성폭력 조사를 담당했고, 위원회 활동 마무리 후에도 열매의 간사로서 피해자들의 곁을 지켰다. 위원회 근무 전 민간단체 일했던 윤 간사는 "많은 일을 헌신으로 도맡아 했던" 기억 때문에 다시는 이러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열매는 그 굳은 결심마저 뒤로 물리게 만들었다. 김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윤 간사의 손을 꼭 잡았다. 윤 간사는 자신의 다른 손을 내밀어 그런 김 대표의 손을 맞잡았다. 김 대표는 "우리 열매가 그늘에 있지 않고 항상 열려 있는 열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광주가 고향이라 5·18을 직접 겪었고, 그 피해를 보았다. 가정을 이끌고, 식당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한 번씩 집회에 서있기도 했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다들 연세도 있고, 몸이 안 좋으시거나 생활이 어려우신 분도 계신다. (피해를 공론화한 뒤) 20개월을 부대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고 열매 활동가들·연대자들과 함께 국가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것이다. 이 사례가 타국가들에도 귀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대에 발맞추면서,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아프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아플 수 있다." - 김 대표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