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보스턴 ‘K-식물 외교’ 전초기지 거듭난다…한·미 공동 프로젝트 본궤도

미국 하버드대가 운영하는 세계적인 식물 연구의 메카, 아놀드 수목원이 우리나라 식물의 다양성을 세계에 알리는 ‘K-식물 외교’의 전초기지로 거듭난다. 한국 식물 컬렉션을 대폭 확장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국립수목원(KNA)과 손잡고 전시 및 자생식물 보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협력은 단순한 식물 교류를 넘어 한국계 미국인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까지 포함하고 있어 한미 양국의 역사적·문화적 유대를 잇는 ‘식물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아놀드 수목원은 우리나라 국립수목원이 제작한 특별 전시를 올해 현지로 옮겨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100년의 시간 차’다. 1900년대 초 아놀드 수목원 소속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제주도, 울릉도 등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남긴 사진들을 국립수목원이 같은 장소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담아 나란히 비교했다. 100년 전과 지금의 식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복식과 생활상까지 한눈에 견줄 수 있어 식물을 넘어 한국의 근현대사 문화까지 아우르는 전시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국립수목원과 아놀드 수목원의 협력은 단순한 학술 교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0여 년 전 윌슨이 씨앗을 뿌린 한국 식물 연구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양국의 식물 유산을 함께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당초 올봄 개관을 검토했으나 보다 내실 있는 준비를 위해 오는 9~10월로 일정을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놀드수목원 측은 “현재 전시 계획은 초기 단계에 있으며, 올봄과 초여름 사이 구체적인 세부 일정이 확정될 것”이라며 “한국 식물을 통해 한미 양국이 공유하는 역사를 모두와 나누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주보스턴 한국 총영사관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 추진된다. 아놀드 수목원은 전시 개관에 맞춰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수목원 내 한국 식물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K-드라마와 한식이 대한민국의 문화적 매력을 세계에 알려왔듯, 식물 역시 우리 고유의 자연유산이자 정체성을 담은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인식은 최근 국내에서 싹트고 있다.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국가 간 신뢰와 유대를 쌓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외교 수단, 이른바 ‘식물 외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웃 국가인 일본과 중국은 자국의 꽃과 나무를 매개로 미국 내 공공 정원을 조성하거나 상징적인 식물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소프트파워를 꾸준히 넓혀왔다. 1912년 일본이 미국과의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벚나무 3000그루를 워싱턴DC에 보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우수한 식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체계적인 문화 자산으로 가꾸고 알리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국립수목원과 주보스턴 총영사관은 공동으로 우리 식물에 담긴 고유한 스토리와 가치를 미국 현지에 알리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K-식물’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동시에 식물을 매개로 외교의 저변을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노력은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동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24년에는 방미 중이던 여야 국회의원단이 보스턴 아놀드 수목원을 방문해 전 세계 식물 종의 보전 실태와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우리 식물 주권 바로 세우기’ 세미나에서도 국회와 정부, 민간이 힘을 합쳐 우리 식물 자원의 주권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보전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민·관·정의 다각적인 협력과 지원에 힘입어 아놀드 수목원은 올해 가을 우리나라 울릉도 등지에서 새로운 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채집 원정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채집의 핵심은 한국의 고유종을 수집해 아놀드 수목원 내 ‘현지 외(ex situ) 보존’ 자료를 확충하는 것이다. 현지 외 보존이란 식물이 자생하는 원래 서식지 밖, 즉 수목원이나 종자은행 같은 시설에서 식물을 보전·관리하는 방식을 뜻한다. 자연재해, 기후변화, 개발 등으로 자생지 자체가 훼손될 경우에도 해당 종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의 최후 안전망으로써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놀드 수목원 측은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학술 연구를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한국 식물 컬렉션을 확장하는 것은 미국 대중에게 한국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소개하는 ‘문화 대사’ 역할과 다름없다”며 “특히 이 지역에 사는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에게는 이 식물들이 멀리 떨어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정서적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놀드 수목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입구 공간 또한 문화적 측면의 우리나라 대표 식물인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새롭게 단장된다. 이곳에는 과거 한국의 한 사찰에서 채취된 씨앗이 뿌리를 내려 자란, 수목원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윌리엄 프리드먼 아놀드 수목원장은 지난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용문사의 1300년 된 은행나무를 눈으로 확인하며 한국 식물의 경이로움을 실감했다고 한다. 프리드먼 원장은 이 경험을 계기로 한국 식물과 인간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수목원 새 단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