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했는데 "몇 시에 올거냐?" 묻는 아내의 속뜻

"몇 시에 올 거야?" "빨리 올라오면 안돼?" 퇴직 후 아내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호출 멘트다. 특히 카페로 '출근'하는 날이면 더 그렇다. 급한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나도 안다. 다만 이런 연락이 반복되면 마음이 눌린다. 어느 순간 그 말은 '시간 확인'이 아니라 "빨리 들어와"라는 재촉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노견 두 마리 밥을 챙기고, 뽀돌이에게 수액을 놓아준다. 저녁 준비도 거든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집 밖 베란다 한쪽엔 아내가 길냥이를 위해 1평 남짓한 천막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두꺼운 비닐을 여러 겹 둘러 바람을 막아둔, 겨울용 임시 거처다. 그 안에서 겨울을 버티는 길냥이 네 마리의 사료를 채우고 물을 갈아주고, 혹시 무슨 일은 없었는지 흔적을 한 번 더 살핀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서 "몇 시"는 약속 시간이 아니라 약, 수액, 밥, 돌봄이 맞물려 돌아가는 하루의 시간표에 더 가깝다. 나는 퇴직할 즈음 스스로 다짐했다. 강의가 없는 날도 회사 다니듯 9시쯤 나가고 6시 전에 들어오겠다고. 집에만 있으면 더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그 다짐이 아내의 하루를 흔드는 변수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왜 자꾸 몇 시에 오는지 묻는 거냐"고 되묻는 순간, 아내의 답은 짧아지고 목소리 톤은 올라간다. "화난 거야?"라고 물으면 "화난 거 아니야"가 돌아온다. 그 다음부터는 뻔하다. 맞대응하면 판이 커진다. 그래서 내가 멈춘다. 소소한 다툼이지만 해결이 아니라 정지 버튼으로 끝나는 셈이다. 다툼의 불씨는 사소한 데서 촉발된다. 내 칫솔은 유난히 빨리 닳는다. 아내가 하나 쓸 때 나는 두 개를 쓴다. 새 칫솔을 꺼내면 아내가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자기 칫솔질은 너무 전투적이야." 잇몸 걱정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꾸가 튀어나온다. "그렇게까지 세게 하는 건 아니야."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