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어느 때나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들이 있다. 성리학의 남존여비, 가부장제의 낡은 족쇄가 유지되던 시기에 발화성이 큰 촛불이 켜졌다. 1898년 9월 1일, 이소사(李召史) 등 서울 북촌의 여성 300~400명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권선언서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발표한 것이다.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정치참여권·경제활동 참여권의 요구가 담겼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조선의 여성은 마치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과 같다. 여성은 먼저 '의식의 병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둘째, 남자와 똑같은 온전한 신체를 가진 평등한 인간인 여성이 어째서 평생동안 깊은 규중에 갇혀 남자의 절제를 받아야만 하는가. 셋째,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사회진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들이 남자와 평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황성신문>, 1898년 9월 8일 논설.) 남녀평등을 위해 여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의 역사성을 갖는 〈여권통문〉은 여성들이 천주교의 전래와 동학의 포교에서 남녀평등 의식이 트이면서 시작되었다. 여성들 스스로가 여권을 선언한 데 이어 여성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후원 여성 단체인 찬양회(贊襄會)를 조직하고, 이 단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단체로서 여학교 설립과 여성계몽사업을 2대 목표로 삼아 이듬해(1899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순성학교(順成學校)를 설립하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