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그리고 난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10년간 남편이 끌어들인 50여 명의 남성에게 의식불명 상태에서 성폭행당했던 프랑스 여성의 이야기를 2년 전 이 연재 에서 다룬 바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조차 고통스러운 이 엽기적 범죄의 피해자 지젤 펠리코(73)의 이름을 다시 만난 것은 일주일 전 한 서점에서다. 최근 출간한 회고록의 제목이 <그리고 삶의 기쁨>(Et la joie de vivre)이었다. 2024년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를 짐작하기에 회고록 제목에 담긴 '기쁨'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전율이었다. 인생을 함께한 남편의 충격적인 행각, 그가 조직한 범행에 동참한 수많은 남자, 법정에서도 죄를 부인하고 그녀를 조롱하던 잔인한 시선들, 산산조각 난 50년의 삶을 딛고 그녀가 마침내 도달한 곳이 '기쁨'이라면, 거기엔 지혜와 용기가 있을 터이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17일 프랑스의 플라마리옹을 비롯해 전 세계 22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그녀의 책은 각국 아마존에서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24일에는 카밀라 왕비의 초대를 받아 영국을 방문한 지젤 펠리코의 모습이 뉴스를 장식했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을 중요한 사회적 책무로 삼아온 카밀라 왕비는 지젤 펠리코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직접 편지를 보내 깊은 존경과 지지를 표한 바 있다. 이번 초청은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강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최악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가 여성 인권의 세계적 아이콘으로 우뚝 서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수치심은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 2020년 11월 2일은 지젤 펠리코의 삶에 쓰나미가 들이닥친 날이었다. 50년을 단단한 신뢰와 애정으로 살아왔던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가 경찰에 연행됐다. 남편이 슈퍼마켓에서 여자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고발되자 집을 압수수색해 증거들을 찾아낸 경찰은 남편을 구속했다. 지젤은 비록 그가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면서 끝까지 남편을 지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지젤을 따로 부른 경찰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남편 컴퓨터에서 2만 개의 성폭행 사진과 비디오가 발견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남편은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약을 먹여 의식불명 상태에 들게 했고, 아내를 성폭행할 남자를 온라인으로 모집해 그 장면을 촬영해 왔다. 그 사이 지젤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종종 자신이 지난밤 있었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뇌 건강에 대한 의심을 갖게 했고 산부인과 질환도 점점 심해져 갔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숱하게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어떤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는지 알아챈 의사는 없었다. 3년에 걸친 수사 끝에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와 50명의 남자들에 대한 재판이 2024년 9월 시작되었다.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비밀 재판이 진행될 수 있었으나 지젤은 익명 보호 대신 공개 재판을 요구했다. "수치심은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자각이 나를 일으켰다." 처음엔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심한 수치심에 시달렸다. 아무도 모르게 이 사건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가해 남성들이 "부부간에 합의된 줄 알았다", "그녀도 즐기는 줄 알았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내가 숨으면 이 사람들의 거짓말이 사실이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다 대중 앞에서 모든 것을 공개해 그들의 거짓말을 깨부수고 자신이 느끼는 부당한 수치심을 그들에게 안기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르고 왔더라도, 그녀가 약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임을 알게 된 남자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가부장제의 관성에 제대로 충격타를 가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사죄의 말을 건넨 사람은 단 한 명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