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20대에는 더욱 그랬다. 어쩌면 조직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지시를 받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늘 이유를 물었다.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업무 방식에도 불만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상사와 자주 부딪혔고 조직과의 거리를 벌려놓기도 했다. 어느 해는 1년에 열 번 이직한 적도 있다. 그만두는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결국은 '왜'라는 질문을 접지 못해서였다. 사회가 원래 이런 곳이라면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회사를 그만둘 때 가족들은 이유를 묻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30대 초반 들어간 회사에서 처음으로 10년을 있었다. '돈'이라는 목표에 그럭저럭 버텨냈던 것 같다. 자존심도, 옳고 그름도 조금씩 내려놓고, 불합리한 처우도 감수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오래 다닌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50대 중반. 방과 후 강사로 일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 앞에서는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다만 이제는 표현하는 방식과 타이밍을 배워가는 중이다. 며칠 전 새로운 학교와도 강사 계약을 진행하며 단톡방 공지를 받았다. 준비물에' 도장'이 적혀있었다. 요즘 대부분 서명으로 대신하는데 굳이 도장이 필요한가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물었을 것이다. " 사인으로 하면 안 될까요? 굳이 도장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도장을 챙겼다. 서랍 속에 있던 인감도장. 20대에 선물 받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도장이다. 계약 당일,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제히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교감선생님은 계약서에 도장을 신중하게 찍었다. 둘러보니 모두가 도장을 준비해 왔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