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날, 희소질환 아이 엄마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2월 마지막 날은 세계적으로 Rare Disease Day, 한국에서는 '희귀질환 극복의 날'로 불린다. 내 아이가 갖고 태어난, 질병분류기호 Q87.2. 10만명 중 한 명 꼴로 진단되는 선천성 복합혈관질환인 KT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도 물론 이날이 호명하는 '희귀질환'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이 '희귀질환 극복의 날'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이날의 이름은 늘 개인의 의지와 감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희소질환자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형평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의 공백이다. 귀한 대접은 바라지도 않아 먼저, '희귀질환'이라는 단어는 기만적이다. '희귀'하다는 건 흔치 않아서 그만큼 '귀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희소질환자(*공식적인 표현으로는 '희귀질환'이 사용되나, 아래부터는 필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희소질환'으로 표기한다)들은 전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숫자가 적어 홀대 당한다. 어떤 질환은 약이 있어도 너무 비싸서 약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어떤 질환은 그런 약을 건강보험 급여화 해 달라고 몇 년씩 매달려야 하고, 또 어떤 질환은 아예 약이 없다. 그 세 가지 경우 모두, 원인은 환자 수가 적어서다. 환자 수가 적어서 약값이 비싸고, 환자 수가 적어서 건강보험 급여화 요구에 힘이 실리지 못하며, 환자 수가 적어서 약물 개발 자체가 안 되거나 속도가 늦다. 모든 것이 경제성으로 평가되는 시대에, 희소질환 약제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아예 외면받거나 초고가 약제가 된다. 이런 상황이니 단어 하나에도 고까운 마음이 든다.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 둘째로,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이겨낸다는 뜻을 가진 '극복'이라는 단어 역시 문제다. 질병과 관련하여 '극복'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병의 정복' '완치'에 있다면, 희소질환은 대개 극복이 불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질환은 배아기에 생긴 체세포 돌연변이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이 돌연변이를 없앨 방법이 있지 않는 한, 이 질환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우리 외에도 수많은 희소질환이 그런 상황에 있다. 의학적으로는 당연하고,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희소질환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기란 어렵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극복'이 아니라, 현대 의학으로 이겨낼 수 없는 질환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다. 세계 희소질환의 날 웹사이트(https://www.rarediseaseday.org/what-is-rare-disease-day/)가 밝히고 있듯, 희소질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기회, 의료 서비스, 진단과 치료 접근성의 형평성"이다. 다시 말하면, 희소질환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회적 기회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불평등하게 주어지거나 박탈되어서는 안 되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기회: 취업과 이동권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