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는 할매지만, 바다에 나가면 스무 살이라우"

새벽빛이 바다 위에 얇게 퍼진다.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파도는 낮게 숨을 고르고 찬 기운은 살을 에듯 스민다. 검은 물결 앞에 선 여든 줄의 해녀는 말없이 물안경을 고쳐 쓴다. 주름 깊은 얼굴 위로 스치는 바닷바람, 그러나 표정에는 두려움 대신 오래된 익숙함이 배어 있다. 수십 년간 이어온 물질과 숨비소리 속에서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방식이자 자존심이 되었다. 거센 물살과 마주하는 순간, 나이는 의미를 잃는다. 바다는 일터이면서도 쉼터이고, 평생을 품어온 삶의 자리로 남아 있다. 여든의 나이에도 그는 변함없이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바다로 향한다. 그렇게 오늘도 자신의 삶이 깃든 바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2월 23~24일, 그녀의 하루를 따라가봤다. 내륙에서 바다로, 생존이 이끈 해녀의 길 충청북도에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북 사람"이라 부른다. 북녘과 가장 가까운 항구, 강원 고성의 대진항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말투도, 삶의 결도 이곳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의 땅에서 자랐지만 그의 인생은 결국 바다로 흘러왔다. 20대초반 처음 고성에 왔을 때 그는 가진 것이 없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이웃이 건네준 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잇던 시절, 바다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바다에 나가면 굶지는 않는다"는 말에 이끌려 해녀의 길로 들어섰다. 고등학교 때는 제복이 멋있어 경찰과 간호사 생활을 꿈꾸기도 했지만 생계를 붙잡아 준 것은 물질이었다. 인내로 건져 올린 삶의 기술 처음 바다에 나섰을 때 그는 수영조차 할 줄 몰랐고 물질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가시처럼 돋아난 성게에 찔릴까 두려워했고 눈앞의 문어조차 쉽게 잡지 못했다.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 바닷가에 엎드려 물속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방법을 익혀야 했다. 제주에서 온 해녀들이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능숙하게 전복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 하며 그렇게 몇 년간 기술을 몸에 익혔다. 납으로 무게를 맞추는 법, 물에 들어갈 때 몸을 곧게 세워 잠수하는 요령, 떠오를 때의 자세와 안전 수칙까지 모두 바다에서 직접 배웠다. 스스로 익힌 잠수 실력으로 그는 저도어장과 북방한계선 인근까지 오가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숙련된 해녀가 되었다. 잠수복과 오리발만으로 15m 깊이까지 들어가 해삼이며 성게, 문어를 잡아올렸다. 바다와 인연이 없던 충북 음성 출신의 오용분씨는 생계를 위해 시작한 물질을 삶의 기술로 일구어 결국 당당한 해녀로 자리매김했다. 거친 먼바다에서 이어지는 대진해녀의 물질 고성 대진의 해녀들은 제주도 해녀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바다를 마주한다. 제주 해녀들이 비교적 얕은 연안에서 물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 대진 해녀들은 어선을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야 한다.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거친 파도를 넘어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