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는 알람이 울린다. 어서 몸을 일으켜 식구들 아침을 챙겨야 하는데 눈길은 스마트폰에서 떠나지 않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는 짝꿍이 되어 포털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멈출 줄 모른다. "내 삶은 버려진 삶은 달걀 껍데기다." 뇌에서는 어서 빨리 움직이라고 모두 지각이라고 협박하지만, 내 몸은 내 눈은 그 글귀에 박혀 꼼짝하지 않는다. 브런치에서 '들풀'이라는 필명을 쓰며 이 시를 쓴 작가는 마트에서 파는 가장 싼 달걀 한 판을 삶으며, 서글픈 자신의 삶을 털어 놓았다( 시 링크 , https://brunch.co.kr/@1521soo/71). "초란 노른자를 닮았던 샛노랗던 정신은 희끄레해졌고, 기꺼이 아이들의 자양분이 되었던 뽀얗던 흰자위 육신도 이제 기력을 잃고 말았다." 거기서 더 읽지 못했다. 가슴이 턱 막혔다. 스스로 운전대를 놓은 시아버지 그러께, 그러니까 재작년에 시아버지가 운전대를 놓으셨다. 날이 좋거나 궂거나 몸이 말짱하거나 쑤시거나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전국을 돌며 손님을 태우던 분이셨다. 자식들이 그렇게 말려도 용돈이라도 벌겠다고 고집하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스스로 내려놓으셨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을까 봐 택시 면허도 바로 반납하셨다. "정말 잘하셨어요!" 자식들은 아버지가 쉰다는 소식에 모두 반가워했다. 이제 어머니랑 두 분이 가고 싶은 곳 다니시며 여유를 즐기시라고 했다. 그동안 시아버지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고 털어놓으셨다. 자잘한 접촉 사고로 틈만 나면 정비소에 차를 맡기는 일이 허다했고, 손님들이 목적지를 말하면 금방 듣고도 잊어버려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베테랑 모범택시 기사로 이름을 날리셨지만, 팔순이 넘자, 해가 갈수록 실수가 잦아지니 겁이 나셨던 것 같다. 결국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당신 스스로 큰 결정을 내리신 거다. 당신 스스로 운전대를 놓았다는 건, 그저 택시 일을 그만두고 여유롭게 지낸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처럼 아끼는 택시도 처분하셨다. 어머니는 이제 여유롭게 아들딸네를 오가며 지낼 꿈에 부풀어 있다가 한방에 그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평상시에도 별로 말씀이 없던 아버지는 그 뒤로 그저 소파에 앉아 강아지 똘이를 쓰다듬으며 텔레비전에만 눈을 두셨다. 아들 며느리나 손주가 찾아가 함께 식사할 때는 한 그릇 뚝딱 드시곤 했지만, 두 분이 계실 땐 거의 수저를 드시지 않아서 어머니가 애를 먹는다고 하셨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