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던 시절 한 통의 우편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낸 지방세가 어디에 쓰였는지를 항목별로 정리한 문서였습니다. 도로 유지비, 교육 예산, 공원 관리비까지 금액이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합계는 내가 낸 세금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세부 항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분명합니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과, 내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용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지서는 단순합니다. 전기를 얼마 썼으니 얼마를 내고, 가스를 얼마 썼으니 얼마를 내라는 식입니다. 숫자는 정확하지만,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단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비용이 포함됐는지, 어떤 설비와 어떤 위험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소비자는 가격을 지불하지만, 구조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불신이 시작됩니다. 전기요금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가격이 높거나 낮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료비가 올랐다는 설명은 있지만 계통 유지 비용은 무엇인지, 예비 설비 비용은 왜 필요한지, 재생에너지 확대가 실제로 어떤 비용을 줄이고 어떤 비용을 늘리는지 소비자가 체감할 언어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전을 겪지 않는 대가를 매달 지불하지만, 그 비용은 고지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발전원 논쟁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어떤 전원이 싸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숨은 비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은 서로 다른 계산 방식을 비교하는 데서 멈춥니다. 그래서 같은 숫자를 두고도 누구는 싸다고 말하고 누구는 비싸다고 말하게 됩니다. 숫자는 많지만, 정보는 부족합니다. 정보의 비대칭은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비용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출은 금액과 무관하게 크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비용은 크더라도 받아들여집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