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러닝을 위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요란한 컨트리 음악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소리 나는 쪽을 두리번거리는데 요란한 국기가 펄럭이는 중형 트럭 하나가 다가오고 있다. 성조기, 파란 X가 박힌 남부연합기와 더불어 붉은 글씨로 'TRUMP 2026'을 인쇄한 깃발이 가장 앞에서 펄럭인다. 뭔가를 더 얘기하고 싶어 안달인 낡은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는 백인 남자 둘이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는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간다. 방금 내가 본 게 뭐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공포가 엄습했다. 세상이 험악해지면 가장 먼저 총을 들고 설칠 이들이 방금 내 앞을 지나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나라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지는 영웅들 "그는 미국의 위대한 영웅이자 순교자였습니다." 2025년 9월 21일, 7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애리조나 글린데일 스테이츠팜 스타디움에선 국장급 규모의 장례식이 펼쳐졌다. 시신은 미 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 투로 운구됐고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유명 보수 언론인들이 추도 연설자로 나섰다. 5시간에 걸친 장례 행사는 미 전역에 생방송 됐다. 십 여일 전, 유타주 밸리 대학 교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탕 소리와 함께 모여있던 3천여 명의 학생들 앞에 연설하던 남자가 고꾸라졌다. 나이 서른 하나의 찰스 제임스 커크(찰리 커크)는 130m 거리에서 쏜 스물두 살 청년의 총에 급소를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는 보수주의 단체 터닝 포인트 USA를 설립·운영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가장 저명한 인사 중 한 명이자, 극우 성향에 가까운 보수주의 정치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다. 대선 캠프 내내 긴밀히 협력하며 선거 운동과 메시지 확산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젊은 인플루언서의 죽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고 자유를 위한 전사였다고. 죽은 커크에겐 대통령이 주는 자유 훈장이 수여됐고 미 전역엔 조기가 게양됐다. 사흘 동안 미 곳곳의 관공서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와 주민 시설들에서도 찰리 커크의 조기가 펄럭였다. '위대하고 전설적인' 찰리 커크가 세상을 떠났다는 대통령의 트윗처럼, 극우 보수 인사였던 서른한 살 남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다. 찰리 커크는 18살에 자유주의 성향의 미국 대학가에, 보수적 가치를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로 터닝 포인트 USA를 만들었고, 수백 곳의 대학에 지부를 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아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이나 기후 변화에 대한 반감 등 오랜 세월 미국이 일궈온 인문학적, 과학적 성찰에 반기를 들어, MAGA 운동의 풀뿌리 지지층 확장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후, '찰리 커크'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은 피살 직전 380만 명이던 구독자가, 현재는 570만 명으로 더 늘어났다. 현재 미 보수 정치 유튜버 중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그의 아내가 단체와 계정 운영을 이끌고 있는 중이다. 미 연방 검찰은 사건 발생 이틀 후 체포된 범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암살 동기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극우들의 해방구, ICE 미국 매체 <슬레이트> 의 로라 제디드 기자는 텍사스에서 열린 ICE(미국이민세관국) 채용박람회에 참석했다.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기사를 써왔고, 이와 관련된 SNS 글도 수없이 올렸기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굳이 제대로 된 이력서를 작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빈칸을 그대로 둔 허술한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확히 6분 후, 그는 합격 메일을 받는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