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는 흔히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리되지만, 그 핵심에는 보다 가슴 아픈 질문이 숨겨져 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는 것. 전쟁과 폭력, 국가의 명령과 체제의 강제가 한 개인의 몸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고, '이동 당한 자'의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소속과 언어, 이름조차도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게 된 채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모국어와 생존을 위한 언어 사이에서 그들은 매 순간 혼란을 경험한다. 낯선 언어의 이방인들 사이에서 매 순간 혼자라는 사실을 감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단지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의 좌표가 재배치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마저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지 않을까. 이 '디아스포라의 감각'이 최근 유난히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한 장면이 우리 앞에 '목소리'의 형태로 도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북한군 포로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은 먼, 어쩌면 '나'와는 별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타국의 전쟁이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게 된 이야기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가의 명령으로 인해 전쟁터에 떠밀린 두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낯선 이국의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들에게 전쟁은 선택이 아닌 통지였고, 의지가 아닌 명령이었다.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내몰린 전장 한복판에서도 그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었고, 죽음 앞에서조차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는 짧은 문장을 남길 권리조차 갖지 못했다. 유언이란 결국 자기 삶의 마지막 주어를 회복하는 일인데, 그들에게는 그 주어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들이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전장의 한복판에서 부상으로 의식을 잃어 포로로 잡힌 이후의 일이다. 아이러니. 적의 통제 아래 자신의 몸이 놓이고서야, 철조망과 규율 속에 갇힌 신분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처음으로 "나는"이라는 말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기도 했기에, 그 순간부터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다시 삶이 위험해지는 역설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중의 아이러니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도, 목숨도, 아무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