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20년을
결정한 전화 한 통...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2021년 여름, 취재차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거기서 처음으로 이 아이들의 존재를 알았다.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아이들. 이 아이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연유로 이 상자 앞에 놓였으며, 이후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이른바 '유기아동'에 대한 보호조치가 법과 제도로 빼곡히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곧이어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땅히 작동해야 할 그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한 번은 부모에게 포기되고 다시 한 번은 국가에게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으로 은폐되는 아이들. 그 현장을 확인하고 나는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지금부터 쓰는 것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무실한 가정 보호 우선 원칙 2022년 가을, 어느 시의 구청 공무원이 부모가 사라진 다섯 살 아이를 인계받았다. 아버지는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는 양육을 포기했다. 그는 과거 관행에 따라 익숙하고 신속하게 아동양육시설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처음 보는 어른들이 가득한 시설 침대에 눕혀졌다. 아이 이름 앞에 성이 붙은 건 시설장이 법원에 성본창설을 신청한 몇 달 뒤의 일이었다. 아동복지법은 보호아동이 발생하면 우선 일시보호시설에서 아동 상태를 점검하고,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가정위탁이나 입양 등 가정형 보호를 우선 검토하도록 정한다. 성본창설 역시 시설장이 아닌 지자체가 주도해야 할 행정 절차다. 그 어느 것도 이 아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신규 보호 조치된 아동 3657명 중 63.1%가 시설에 입소했고, 가정형 보호를 받은 아동은 36.9%에 그쳤다. 2023년에야 비로소 시설 입소와 가정위탁 수치가 비슷한 수준으로 좁혀졌지만, 그 '개선'이 나타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한국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가정 보호 우선 원칙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켜질 이유도 없었다. 아동복지법 제12조는 지자체마다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보호아동의 조치 방향을 심의하는 법정 기구다. 2016년에서 2019년까지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 226개 시군구 중 연간 단 1회도 개최하지 않거나 서면으로 대체한 지자체가 상당수였다. 심지어 전국 지자체의 30~40%는 연간 개최 횟수가 0이거나 1회에 그쳤다. 위원회가 열리지 않은 지자체는 담당 공무원이 전문 심의 없이 단독으로 아이의 거처를 결정하게 된다. 아이의 삶을 결정짓는 가정위탁이나 입양 가능성을 따져볼 절차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담당 공무원은 과거 선임자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아무런 가책 없이 관련 시설에 연락하고 자신의 업무를 종결시켰다. 이것으로 아이의 남은 삶이 결정되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정신을 토대로 마련된, 법과 제도는 한낱 활자로만 존재하는 겉치레로 취급되었다. 시설이 아이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하나의 통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025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시설거주 아동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약물 처방률은 23.3~27.8%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일반 아동의 처방률은 0.94~1.5%였다. 시설 아동의 처방률이 일반 아동의 15~20배라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