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티를 이제 막 벗은 듯한 세 명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식사 마칠 때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대화 말미에 "혹시,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라 묻자, 한 아이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어째서인지 되묻자 다른 아이가 답한다. "제가 말한다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 알고 있으니까요." 3월이면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이라 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발언이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을 내게 말해 주었다.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니냐는 반문에 아이는 도리어 나를 교정해 주었다. "아니에요. 이건 현실적인 거예요."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들 얼굴엔 냉소조차 없다. 진지하고 건조한 대답이다.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침묵을 '현실적'이라 믿게 했을까.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계산된 전략'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다시 펼쳐보자. 이 동화는 어리석은 임금과 이를 속여먹는 사기꾼 중심이다. 우리는 거짓말과 위선에 대한 교훈으로 이 동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신하와 백성들의 '계산된 침묵'이다. 그들은 임금의 알몸을 보고도 진실 앞에서 침묵한다. 이들은 "알면서도 왜 고(告)하지 않았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하였다. 흔히 생각하듯이, 이들이 입을 닫은 것은 상황을 몰라서도 어리석어서도 아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잃게 될 지위와 안전을 계산하였다. 결국 불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침묵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 봐야 한다. 그 결과 다수가 침묵하는 순간 말도 안되는 권위라도 권위는 강화된다. 권위는 설득이 아니라 계산된 침묵으로 유지된다. 혹자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가?"라며 신하와 백성(군중)의 비겁함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침묵의 원인을 개인의 용기 부족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이 침묵이 발생하게 된 '구조'를 우리가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왜 말하면 위험한가"와 "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가"이다. 동화속 아이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모를 뿐이다. 벌거벗은 채 임금님이 가두행렬을 했을 때 한 아이만이 진실을 말한다. 아이가 특히 용기가 많고 특별한 성품을 가져서인가. 아니다. 동화 속 아이가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공동체가 공유하던 침묵의 규칙을 아직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제 말해야 손해인지, 언제 침묵해야 안전한지, 언제 모른 척해야 살아남는지 말이다. 동화 속 아이의 외침은 위대한 용기라기보다, 아직 사회적 손익 계산에 익숙해지지 않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즈음 되면, 우리는 갈등해야 마땅하다. 이 아이처럼 용기내어 외치라 할지, 아님 침묵하라고 할지 말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