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여행의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 밝았다. 다음날 오전이면 정들었던 시트로엥 DS4를 반납해야 한다.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아내는 평소보다 빡빡한 '라스트 스퍼트' 일정을 내밀었다. 부엌에선 아내의 분주한 샌드위치 제조 소리가 들리고, 나는 익숙한 손길로 고프로 카메라와 짐을 챙겼다. 이날 목적지들은 한국인들에게 그리 알려진 곳이 아니다. '요정의 숲' 플리트비체는 검색 한 번에 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오늘 우리가 갈 파클레니차(Paklenica)와 즈르마냐(Zrmanja)는 국내 여행자들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입구가 어디인지, 길은 험하지 않은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은퇴 후 우리가 배운 가장 큰 지혜는 '모르는 길을 즐기는 법'이다. 정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선입견 없이 마주할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기에,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거대 바위산의 오케스트라, 파클레니차 국립공원 자다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50분을 달려 도착한 파클레니차 국립공원. 1949년,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벨레비트(Velebit) 산맥'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 비수기의 혜택은 이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1인당 5유로의 입장료와 3유로의 주차비를 내자, 안내원은 좁은 산길을 따라 차로 2km를 더 올라가라고 일러주었다. 성수기라면 입구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었을 길을 편안하게 차로 이동하며 '비수기 여행자'의 특권을 누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거대한 수직 암벽의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수천 년 동안 빗물과 지하수가 석회암 바위를 녹여내며 만든 깊은 골짜기는 마치 거인이 도끼로 산을 갈라놓은 듯했다. 계곡물 소리는 바위산에 부딪히며 거대한 울림통을 만들었고, 그 웅장한 화음은 자연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그 자체였다. 이곳은 전 유럽 클라이머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400개가 넘는 암벽 등반 루트가 산 곳곳에 뻗어 있다. 실제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찔한 절벽 끝에 매달려 중력과 싸우는 클라이머들이 보였다. 은퇴 후 평탄한 길만 찾던 우리에게, 제 몸 하나에 의지해 수직의 삶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경외감을 넘어 묘한 자극을 주었다. '밀키스' 빛 계곡물과 아니차 쿡의 그림자 계곡을 따라 걷는 길, 물빛이 신비롭다. 석회 성분을 머금은 물은 햇빛 아래서 뽀얀 우유를 섞은 듯한 '밀키스' 색깔을 띠었다. 스위스 계곡에서나 보았던 그 영롱한 빛깔이 이곳 자다르 근교에도 흐르고 있었다. 바위산 특유의 서늘한 기운 때문인지 체감 온도는 영상 14도보다 훨씬 낮게 느껴졌다. 장기 해외살이의 짐을 줄이느라 등산화 대신 신은 일반 운동화가 문제였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에 피로가 쌓였다. 우리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파클레니차의 상징이자 712m 높이의 거대 암벽인 '아니차 쿡(Anića Kuk)' 근처까지만 발길을 옮긴 뒤,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