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을 물리고 나니 아버지의 빈자리가 보였다. 설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엄마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세배를 받으셨다. 세배를 마친 우리는 으레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의 덕담을 들었다. 아버지의 덕담은 좀체 끝날 줄 모르는 연설문이나 설교에 가까웠다. 삼국유사부터 근현대사까지 훑고 나서야 겨우 가족사로 넘어왔다. 시작은 산뜻했으나 지루하고 긴 시간이 흘렀다. 우리 오남매는 새해 첫날부터 애국을 생각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뒤이어 조상을 잘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무릎에 쥐가 날 때쯤 엄마가 눈을 껌벅이면서 아버지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만하시라는 신호였으나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고 길게 이어가셨다.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세뱃돈에 관심을 둔 아이들의 눈초리에 힘이 빠져갈 무렵, 아버지도 힘든지 슬그머니 마무리 지으셨다. 엄마는 손주들에게 세뱃돈을 나눠주면서 조용히 웃으셨다. "얘들아, 세뱃돈 받기 참 힘들다, 그치?" 짧게 끝난 엄마의 덕담 그리고 세뱃돈 그 고지식했던 아버지가 떠난 그 자리에 올해는 엄마가 앉으셨다. 세배하는 손자 손녀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92세의 노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해맑았다. 절을 끝낸 우리는 마치 집안의 오래된 전통인 양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의 덕담은 아버지의 긴 연설문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간결하고 짧아 싱거울 정도였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라." 구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건 오로지 이 두 가지뿐이라는 듯, 명쾌하고 강렬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도 두툼한 지갑을 들고 계셨다. 엄마가 지갑을 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사회인이 된 조카들이 하나둘 벌떡 일어나서 엄마께 봉투를 드렸다. 명절을 맞아 웃어른께 용돈을 드릴 줄 아는 품성으로 잘 자란 조카들이 대견스러웠다. 언제나 받기보다 주는 기쁨에 익숙한 엄마는 멋쩍은 표정으로 손주들의 봉투를 받으셨다. 우리 집안은 내가 장녀이고 밑으로 여동생 셋과 막내 남동생이 있다. 넷째 딸은 미국 시민이 된 지 오래 되어 이 자리에 없었다. 아홉 명의 손자 손녀는 모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장을 위해 꿈꾸고 있다. 어느새 이렇게 듬직하게 자라 이 나라 곳곳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뿌듯했다. 드디어 엄마의 지갑에서 세뱃돈 봉투가 나올 순서였다. 봉투를 꺼내며 중얼거리는 엄마의 혼잣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라면 많이 준비하셨을 텐데, 나는 얼마 못 줘." 쑥스러운 듯 봉투를 내미는 엄마의 손을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새 봉투가 아닌 누구한텐가 받은 구겨진 봉투, 은행 로고가 찍힌 봉투 등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봉투를 재활용하다니 엄마는 역시 '절약의 달인'다웠다. 한자 공부할 때 쓰시라고 새 공책을 사다 드려도 달력 뒷면이나 여백을 활용하는 분이 아닌가. 엄마한테 새것이란 절대 쓰지 못할 보물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하찮은 것이라도 아껴야 직성이 풀리는 분한테 나라에서 '절약상'이라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린 친손자, 손녀가 받은 봉투는 특별해 보이길래 궁금해서 여쭈어봤다. 데이케어센터에서 돌봄 차를 운전해주시는 분이 만든 건데 두 개를 엄마한테만 몰래 주신 거라고 했다. 엄마도 센터에 갈 때마다 선생님에게 뭔가를 몰래 갖다 드리곤 했으니 그 보답이었던 셈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