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이라고 하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나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비음주자에게도 간암 발생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게 비만이나 대사 이상을 동반한 간암은 진행 속도가 빠르고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내 연구팀이 비만 원인 간암의 악성화 원인을 찾아 눈길을 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과 연구팀은 간 섬유화 과정에서 분비되는 엔도트로핀이라는 물질이 CD44라는 암세포 표면 수용체와 결합해 암을 악화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5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암 연구’에 실렸다. 일반적으로 비만과 대사질환은 간 조직에 만성적 손상을 입혀 음주만큼이나 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문제는 대사질환과 관련된 간암은 암세포 증식이 빠르고 기존 표적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엔도트로핀은 간암 악성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지만, 어떤 통로를 거쳐 암세포 악성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한 메커니즘은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팀은 엔도트로핀의 수용체 ‘CD44’ 단백질을 찾아냈다. 비만 상태의 간 조직에서 엔도트로핀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이것이 암세포 표면의 CD44 단백질과 결합한다. 이때 암세포 내부에선 ‘STAT3’라는 신호 경로가 활성화되면서 암세포는 폭발적으로 증식해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는 공격적인 성질을 띠게 된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으로 이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암세포 표면의 CD44 단백질과 엔도트로핀의 생성을 동시에 억제한 생쥐는 종양 발생 빈도가 낮아지고 암 세포 크기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항암제 반응성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도트로핀 결합을 차단하자 잘 듣지 않던 표적 항암제인 소라페닙에 대한 반응성이 회복됐고, 간 섬유화와 염증 증상도 함께 완화되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를 이끈 박지영 UN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엔도트로핀과 CD44 수용체의 결합이 비만 동반 간암의 악성화를 결정짓는 핵심 고리임을 밝혀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며 “이 결합을 차단하는 약물을 개발하면 공격적 간암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