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엄흥도는 500년 전 기록과 얼마나 닮았을까

문화학자 월터 옹은 구술이 문자가 되면서, 즉 매체에 따라 언어의 특성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말과 글을 거쳐 영화로 재현된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과연 500년 전의 그와 얼마나 닮았을까. 5일 기준 900만 관객을 넘어선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엄흥도 관련 기록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물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기에 영화관을 나서기 바쁘게 바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았다.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은 원본과 더불어 한문으로 된 원문과 국역본을 함께 제공한다. 국역본에서 '엄흥도'는 무려 22회 검색된다. 성을 떼고 '흥도'나 '엄 호장(戶長)'처럼 다르게 불린 경우까지 합치면 더 많이 호명된 것을 알 수 있다. 엄흥도가 실록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단종 사망 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년)이다. 우승지 신상이 노산군(단종)의 묘를 참배하고 와서 한 보고 속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哀傷)스럽게 여긴다.' 하였다." 그 뒤로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각 1회, 숙종실록 2회, 영조와 정조 실록에서 각 6회, 고종 5회까지 합쳐서 총 22회 언급된다. 후세로 갈수록 더 자주 언급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기술되었을지 일일이 읽어 보았다. 읽다 보니 한 인물의 기록과 의미가 매체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흐름이 보였다. 말에서 글로 엄흥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국가 기록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1516년 중종실록에 등장하는 첫 문장은 "사람들 말이(人言)"라는 전언(傳言) 구조를 취한다. 그는 발화의 주체가 아니라 인용의 대상이었다. "찾아가 곡하고 장사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