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교육은 개신교에 빚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사들은 전국 각지에 학교를 세웠고, 신학문의 세례를 받은 졸업생들은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주역이 됐다. 그곳이 일제강점기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산실이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달 21일, 영남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됐다는 개신교 학교를 찾았다. '대구 시민 주간'이 시작된 날이어서, 도심 곳곳이 시민들과 외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대구 시민 주간'은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인 국채보상운동(2월 21일)과 2.28 민주운동의 일자에 맞춰 제정되었다. 흔히 '대한민국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서문시장 주변은 기실 우리나라 초기 개신교 선교의 중심지였다. 서문시장을 감싸듯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계명대학교 의대와 부속병원, 계성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담장을 마주하고 있다. 나란히 자리했던 계성고등학교는 지난 2016년 도심의 외곽으로 이전했다. 초창기 계성학교는 지난 1906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인 제임스 애덤스(한국명은 안의와)에 의해 설립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그 이듬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근대 교육과 의료 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고, 대부분의 선교사는 교사와 의사의 역할을 겸하였다. 훗날 제중원과 세브란스로 이름을 바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도 선교사인 알렌이 세운 것이다. 그가 갑신정변 당시 급진개화파의 공격으로 크게 다친 민씨 척족들을 치료해 준 대가였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등 수많은 학교 역시 개신교 선교 사업의 일환이었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서의 역사적 위상 교문에 들어서면 서문시장의 왁자지껄함이 거짓말처럼 잦아든다. 담쟁이넝쿨이 흘러내린 붉은 벽돌의 오래된 건물이 고풍스러움을 더하고, 도심 속 공원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과거 교사(校舍)로 쓰였지만, 지금은 기념관으로 탈바꿈해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대구읍성의 성벽을 허물어낸 돌을 초석으로 사용했다는데, 거기에 건물의 건립 연도를 새겨놓았다. 기와지붕을 얹은 서양식 건물 앞 '3.1운동 기념탑'이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당시 교사와 학생 대부분이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학교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 대구 지역 3.1운동의 거점으로서, 지금도 기념일인 3월 8일 전교생이 모여 성대한 행사를 연다고 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