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리에 평화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

1983년 9월 1일, 소련 전투기가 민간 여객기인 대한항공 007편을 항로 이탈을 이유로 격추하여 269명 탑승자 전원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 다음 달인 10월 9일에는 북한이 버마 순방길의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노리고 '아웅산 테러'를 저질러 장관, 청와대 수석 등 다수의 정부 고위 관료가 사망했다. 국내에서는 군사정권의 폭압적 통치에 맞선 민주 세력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이처럼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높던 때에 군에 입대하여 훈련받던 나는 12월에 4주 동안 철원 지역 철책선에서 근무했다. 일출 직전 한 시간의 경계 근무가 적 침투에 취약하다는 명분으로 밤새 교대 근무하며 고생하던 병사들이 모두 일어나 초소에 투입되는 게 일상이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걸 우리는 '합동근무'라고 했고 북은 '전원감시'라고 한다고 들었다. 200킬로미터 훌쩍 넘는 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무장한 젊은이들이 새벽에 서로 마주 보고 감시하며 추위에 덜덜 떠는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였다. 한겨울 매서운 북풍이 우리 얼굴을 때리지만 인민군은 그걸 등지고 견디는 것이니 우리가 더 손해네, 하는 냉소 섞인 엉뚱한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죽이곤 했다. 그 짧은 기간에도 이웃 부대에서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이어졌고, 부하들에게 발길질 일삼는 소대장을 견디다 못한 선임하사는 그를 폭행하고 영창에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대학 후배 하나가 정치적 성향이 없는 어느 '온순한' 동아리의 회장이었지만 동아리연합회 활동이 시위와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강제 징집을 당해 최전방에 와 있다가 차창을 온통 검게 칠한 보안사 지프가 나타나면 따라가 조사받아야 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