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깜짝 놀란, 아홉살 아이의 묵직한 한 마디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작하면서, 영화 <곡성>의 대사 "뭣이 중한디"가 생각난 건 어째서일까. 일을 하기까지 7전 8기는 아니라도, 5전 6기 쯤은 될 것 같다. 면접 보고 떨어진 것 뿐만 아니라 몇 군데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안 온것까지 포함하면 7전 8기일수도 있겠다. 이쯤 되니 자신만만했는데 왜 안되는지 알고 싶긴 했다. 결국 일하기로 한 곳에서는 하기로 했던 분이 취소되면서 연락이 왔다. 사실 대학에서 아동에 대해 공부하고 보육 교사와 정교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아이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된 건 부모가 되고 부터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 몸으로 체득 되어 진짜 내 것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아이의 눈물과 콧물, 갈등와 화해, 행복과 불행이 뒤섞인 실타래를 풀어가며 아이라는 존재를 알아갔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의 보이지 않는 곳과 밑바닥까지 겪어봐야 하는 것이기에, 그저 활자로 아는 앎은 온전한 앎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모 입장에서 전공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이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아이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지, 그 나이 또래의 대해 얼마나 능숙 한지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여기저기 내민 나의 이력서를 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뭣이 중한지'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9살 아이와 함께 한 하루 돌보게 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다. 이제 1학년 신입생의 딱지를 막 떼어냈지만 여전히 귀여움을 벗지 못한 저학년이다. 이 아이와의 일과는 피아노 학원에서 만남에서 시작된다. 피아노 학원 창문으로 내 얼굴이 보이면 아이는 살포시 웃는다. 아이와 집으로 오면서 횡단보도에서 아이 손을 잡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한 손에 쏙 들어온다. 큰 아이가 어릴 때 손을 잡으면 작은 손에 힘을 주며 "엄마 꽉 잡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