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 민족사의 정맥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서훈해야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의 철벽에서 근대의 문을 연 횃불이고, 신분해방을 천명한 권리장전이고, 반외세의 기치를 든 자주선언이었다. △불살생 △제세안민 △왜병축출 △탐관오리 소탕의 4대강령과 △ 노비문서소각 △문벌타파 △토지균등분배 등 12개조 폐정개혁안은 세계 어느 혁명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는 100여 년의 시차가 있었지만 목표와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리코뮌에 비해 53개 군현에서 실시된 집강소는 오히려 앞섰다. 1850년에 시작된 중국의 태평천국운동과는 유사점도 있었지만 권력의 야심에 찬 홍수전과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은 품격과 추구하는 결이 달랐다. 1862년 진주에서 시작하여 32년간 전국적으로 일어난 70여 건의 민란은 모두 1894년 동학농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신채호가 개탄했듯이 우리 역사는 창업·역성혁명·쿠데타·반란·반정이 있었으나 혁명은 없었는데, 민본(民本)의 주체인 농민이 마침내 봉기한 것이다. 외세의 개입으로 프랑스혁명처럼 국왕을 단두대에 올리지는 못하고 일본군과 250 대 1 수준의 무력의 차이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패퇴하고 말았지만, 혁명의 마그마는 이후 국권회복과 민주화의 에너지로 작동되었다. 의병→의열투쟁→3·1혁명→임시정부→의열단→광복군→분단반대→통일정부→4·19혁명→반유신투쟁→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 촛불시위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면면한 민족사의 정맥은 동학농민혁명에서 발원한다. 세계사의 암흑기인 봉건왕조시대에 동학농민혁명이 아니었으면 우리 민족은 자유와 평등, 진보와 변혁의 가치를 모르는 저급한 종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조롱을 받았을 지 모른다. 동학농민혁명은 민본의 주체인 농민(어민·상인·광부·천민 포함)이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본사상에 따라 후천개벽에 나선 근대의 횃불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