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난간에 놓인 운동화 두 켤레 햇살이 유난히 좋은 자다르의 오후다.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가 일광소독을 위해 난간 위에 나란히 놓인 우리 부부의 운동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나설 때만 해도 나름 멀끔했던 녀석들이었다. 동남아 여행부터 시작해 유럽의 끝자락에 닿은 지금까지, 수많은 계절과 국경을 넘나드는 동안 거울 속 내 얼굴에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신발들도 지난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내 운동화의 뒤꿈치 천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그 안쪽으로 삐죽하게 솟아오른 정체 모를 플라스틱 지지대가 걸을 때마다 뒤꿈치를 파고들었다. 그 통증을 이겨보겠다고 매일 아침 테이프를 덧방하며 버텼던 흔적들이 신발 안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내의 신발은 더 처량하다. 발등이 접히는 부분에 보기 흉한 구멍이 뚫려,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양말까지 눅눅하게 젖어 들었다. 이 낡은 신발의 틈새에는 동남아의 습하고 눅눅한 공기부터 오흐리드의 맑은 호수가 씻어내린 느긋한 평화, 몬테네그로의 투박한 돌길 위에 새겨진 중세의 시간,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짠 기운 머금은 바닷바람이 층층이 엉겨 붙어 있다. 2026년 3월, 한국으로의 복귀를 앞둔 지금 이 낡은 동반자들은 닳아버린 밑창을 드러낸 채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우리가 함께한 그 길들... 괜찮았지?" 은퇴라는 이름의 '정지', 그러나 발은 멈추지 않았다 20여 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며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정지(Stop)'였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구두끈을 묶고 전장 같은 일터로 향하던 발걸음이 갈 곳을 잃었을 때, 내 삶의 동력도 함께 꺼져버릴까 봐 겁이 났다. 은퇴는 사회적 사형선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손을 잡고 유럽으로 건너온 뒤, 내 발은 직장인 시절보다 훨씬 더 분주하고 뜨겁게 움직였다. 코토르 요새의 거친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 코토르만을 조망할 때 이 신발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두브로브니크의 뜨거운 성벽 위를 걸을 때는 묵묵한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알바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의 낯선 골목길을 헤맬 때도 이 신발은 불평 한 마디 없었다. 최근 렌터카를 타고 누볐던 파그 섬의 날카로운 암벽 지형과 플리트비체의 젖은 나무 데크 위에서도 이 낡은 신발은 우리 부부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