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작 어머니 앞에선 도망쳤다

나는 무연고 독거노인 두 분을 돌보고 있다. 병원 보호자란에 서슴없이 내 이름을 적고, 아무도 찾지 않는 병실을 수시로 드나든다. 링거줄을 확인하고,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식어버린 죽을 숟가락으로 떠드리면서 나는 그분들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을 보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말해왔다. "돌봄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그 말은 지금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정작 내 어머니의 노화 앞에 서니, 그동안 내가 휘둘렀던 정의로운 언어들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뼈아프게 실감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어머니는 평생 집안을 지켰다. 아버지의 술과 폭력, 도박의 그늘 아래서도 어머니는 살림을 놓지 않았고, 우리 형제들을 온몸으로 감싸안았다. 어머니의 하루는 늘 새벽 첫차에서 시작됐다. 서울 잠실 야구장의 빈 스탠드를 청소하고 남의 집 살림을 돌보며 우리를 먹이고 공부시켰다.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었다. 설거지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 집으로 떠나야 했던 손, 빈 도시락을 싸 들고 새벽 버스에 오르던 손. 그 손이 우리를 키웠다. 우리는 자랐고, 어머니는 늙어갔다. 그 시절 나는 노동운동을 했다. 광장에서 혁명을 말했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정의와 연대라는 거창한 언어를 구사하며 살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의 굽은 등과 지친 어깨를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은 내가 말하던 '거대한 정의'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도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끈적한 가족의 책임보다, 추상적이고 깨끗한 정의 뒤에 서 있는 일이 훨씬 쉬웠으니까. 동생들은 달랐다. 묵묵히 어머니 곁을 지키며 삶을 보조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던 막내 동생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제야 나는 목격했다. 돌봄이란 말로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태워 가며 버티는 일이라는 것을.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