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남편과 화내는 딸... 그녀가 내린 뜻밖의 선택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6년 5월 이탈리아 어느 남부 소도시, 국민투표를 앞두고 거리 곳곳에 선거 벽보가 붙고 사람들은 어디서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집안 생계와 살림에 24시간이 모자란 중년여성 '델리야'에겐 그저 호사가들의 수다에 불과하다. 가족 내에서 아무 발언권 없이 남편의 학대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딸 '마르첼라'가 부잣집 혼담이 들어온 게 삶의 유일한 낙이다.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딸이 물려받지 않기만 바랄 뿐. 약혼식 준비에 바쁜 델리야에게 어느 날 아침,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삶의 조건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타임머신에 관객을 태우고 지난 세기의 교훈으로 향한다. 목적은 간명하다.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이 어떤 맥락과 배경 아래 탄생했는지에 대한 상기다. 핵심 배경은 1946년 이탈리아 국민투표다. 6월 2일 결과가 발표된 해당 선거는 현대 이탈리아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적 분기점이다. 로마제국 이후 내내 분열된 상태던 이탈리아 통일이 완수되었지만, 양차 세계대전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치하에서 전근대적 왕정 국가에 머물던 이탈리아가 국민투표로 왕정 폐지-공화국 전환 여부를 이 선거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국민투표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참여한 선거다. 통념과 달리 서구 보통선거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초창기 여성 참정권 요구가 활발했던 영국도 동명 영화로 나오기도 한 '서프러제트' 운동에도 불구하고 1928년, 미국이 1920년, 프랑스도 1946년에 이르러 전면 도입됐다. 다수 국가가 빨라도 1차 세계대전 이후, 늦으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여성의 보통선거권을 보장했음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꽤 놀라운 면모다. 뒤늦은 여성 참정권 도입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다. 영화 속 이탈리아 국민투표 과정에서도 여성에게 투표할 권리를 부여하는 데 격한 논란이 이어졌다. 작품 내에 투표 핵심 쟁점이 소개되지 않지만,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격하게 대립하던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여성의 첫 투표가 오히려 보수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컸기에 정파적 이해에 따라 시기상조론이 적잖게 대두했다. 이는 당시 여성의 사회참여나 발언권이 미약한 데다, 교육수준도 낮아 투표권을 부여해도 자주적 의사결정을 행하지 못하리란 편견 탓이었다. 다만, 영화 속에서는 거리의 벽보로, 주변 인물들의 여담으로 흘러나올 따름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주인공 가족의 생활상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부각하려는 거대한 설계에 기반한 것이다. 직설적인 '계몽' 약발이 먹히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70여 년 전 역사적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 제작진의 고심 결과다. 당대 이탈리아 여성의 삶 델리야는 무능한 남편에 잡혀 산다. 세 자녀를 돌보고 남편은 물론 종일 누운 채 지내는 시아버지 수발까지 도맡는다. 가족 돌보기도 하루가 게 눈 감추듯 휙 지나갈 판인데 식구들 먹여 살리는 데에도 중추로 활약하는 처지다. 대가족 아침 밥상 차려놓고 정작 자신은 대충 끼니를 때운 다음 방문 간호와 부잣집 빨래, 옷가지 수선으로 정신이 없다. 한푼 두푼 모은 땀의 대가는 고스란히 남편에게 바쳐야 한다. 벌이가 시원찮다며 핀잔을 일삼는 남편은 막상 뭘 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남편은 툭하면 구타를 일삼는다. 그나마 폭력을 행사할 때 자녀들 눈에 안 드러나게 때리는 게 다행이라 할까.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 마당에서 수다를 떨던 아낙네들도 델리야가 남편에게 얻어맞을 땐 침묵한다. 그녀들 역시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위로하고 도움 주지만, 근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다들 참고 견디며 버틸 뿐이다. 여성들은 할머니에서 엄마, 본인(들), 다시 자녀들에 대물림하며 살아왔기에 다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델리야 역시 마찬가지다. 부디 딸에게는 자신이 겪는 끔찍한 삶이 반복되지 않기만 소망한다. 딸이 매력적 외모 덕에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약속한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아줄'인 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남편 손찌검이 자기에게 쏠리게 해 딸은 보호하려는 소극적 방어가 전부다. 하지만 딸은 엄마의 대처가 비겁하고 무능하다며 화내곤 한다. 델리야의 남편 역시 처음엔 자신을 깊이 사랑하듯 보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단서는 시아버지, 그리고 지역 풍경에 있다. 남편이 그렇게 된 건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낙후한 이탈리아 남부 동네의 풍경, 가난하고 무능한 남성들이 가장의 책임 대신 헛된 권위만 집착하는 사회, 바깥일 화풀이를 만만한 아내에게 가해도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가 수백 년 팽배한 탓에 여기에 대해 의심하길 잊어버린 공기가 남편을 잠식한 탓이다. 그보다 조금 나은 편처럼 보이는 동네 남성들 역시 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끊긴 어려워 보인다. 이탈리아 남부의 북부 및 해외 이민은 선택이 아닌 다른 삶을 위한 탈출에 가깝다. 차별의 고리를 끊는 방법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