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과 함께 발생한 종교와 그 공동체들은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세상 곳곳에 그들이 경배하는 신을 위한 건축물 '신전(神殿)'을 남겼다. 기독교의 성당과 교회, 불교의 절, 유교 사당, 힌두교 사원, 이슬람교의 모스크, 유대교 회당처럼 이름은 달랐지만 신전은 종교와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했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이던 정교일치(政敎一致) 시대. 신전은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종교적 의례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과 권위를 높였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이태리 로마의 판테온, 중국 베이징의 태묘(太廟)처럼 세계 모든 민족들은 다양하고 고유한 형태의 신전을 지었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신전은 지금까지도 인류문화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 '종묘(宗廟)' "건축으로 이렇게 고요하면서 경건한 공간을 만든 건 기적에 가깝다.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일까?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대체 누가 우리나라 어떤 건축물을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하며 이토록 극찬했을까. 캐나다 출신 미국인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2025)가 한국의 종묘를 방문하고 남긴 소감이다. 프랭크 게리뿐만 아니다. 일본 현대 건축의 거장 시라이 세이이치(白井晟一 1905~1983)도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라며 종묘의 가치를 극찬했다.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조선의 종묘. 두 건축물 사이에는 2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강이 흐르고 있다. 또한 석재와 목재라는 재료의 본질적 차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경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서양 신전의 대표 격인 파르테논 신전에 비견되며 세계적 건축가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명을 주는 종묘는 어떤 곳일까. 1392년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추진했던 일 중의 하나는 새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종묘와 사직은 유교국가에서 갖춰야 할 사상이 담긴 핵심 시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루(으뜸) 종(宗) 사당 묘(廟). 말 그대로 종묘는 국가의 으뜸 사당이다.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유교 사당으로 일종의 '신전(神殿)'이다. 신주란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고 믿었던 나무패를 말한다. 유교 사상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에 묻힌다고 믿었다. 그래서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육신은 왕릉에 묻고 영혼은 신주에 담아 종묘에 모셨다. 사직(社稷)은 땅을 주관한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농업을 국가의 근본으로 여겼던 조선에서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종묘와 사직은 국가 최고의 제례공간으로 법궁인 경복궁보다 더 중요한 시설로 여겼다. 역사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종묘와 사직은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종묘와 사직은 매우 엄격한 조영(造營) 원리에 따라 조성됐다. 고대 중국의 예법서인 <주례(周禮)>에 나오는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을 따랐다. 즉 "나라를 세우면 도성의 궁문 밖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을 세워야 한다"라는 원리다. 임금이 경복궁 근정전에 좌정했을 때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지금 서울 종로구에 있는 종묘와 사직단은 이 원리를 따른 것이다. 국보로 지정된 종묘의 중심 '정전(正殿)'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