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에,
아픔으로 이식된 길이
있습니다

인왕산을 타고 온 성벽이, 여기서 끊겨 버렸다. 산을 내려 온 성벽의 관성으로 경교장에 든다. 하마터면 잊고 지날 뻔했다. 돈의문 터 아래이니, 분명 성 밖이다. 금광으로 거부가 된 친일파가, 치부를 가리고 죽음을 모면하려 백범 김구에게 거처로 내주었을까. 예스러운 파사드(Fasad, 정면)의 집이 번다한 병원에 갇혀 무척 퀭한 표정이다. 백범을 바라며 들끓었던 그 많던 애국청년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2층 유리창, 총탄이 뚫은 구멍만 선연하다. 돈의문 터가 마냥 허전하다. 문이 없어서가 아니다. 억지로 사라진 이유가 떠올라서다. 성곽이 헐린 도성이다. 방어를 포기했다기 보다, 다른 힘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자리다. 이식된 근대는 그처럼 태풍보다 드셌다. 문은 자리를 고집할 수 없었고, 침탈의 파고는 빈자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낯선 힘은 언제나 가장 느슨한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법이다. 경교장도 그중 하나다. 길 건너 정동길에 들면 느슨한 틈을 파고든 힘의 흔적이 지천이다. 공간에는 종교와 학교, 병원을 앞세우며 밀려든 근대화가, 경교장 파사드 마냥 곳곳에 박혀있다. 정동은 헐린 성벽의 흔적조차 더듬기 어려운 공간이다. 사라진 성벽이 섬처럼 고적하다. 갇힌 담장 안, 근대화라는 드센 파고가 이젠 고요로 머문다. 정적이 오히려 재빠른 현재에 맞서 저항하는 듯하다. 경운궁과 외국 공관들, 학교와 남은 교회. 시대는 지나갔어도, 공간은 아직도 긴장된 자세를 풀지 못했다. 인의예지 중 서대문은 의(義)다. 경복궁 영추문이 가을이듯, 돈의문도 그렇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양도성을 돌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을에서 여름 숭례문을 향해 걷는다. 계절을 거스를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에도 계절을 붙인 지혜가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문득 '그대는 지금 생의 어느 계절을 걷고 있는가?'라며 묻는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 새문안로에선 도무지 성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정동길로 접어들면 그러나 걷기엔 즐겁다. 근대 건축물이나 당시 이야기가 구석구석 서려 있어서다. 그랬어도 성벽 대신 온통 가두고 막은 담장 일색이라니. 정동길 초입, 연이은 건물군 뒤편의 한성중화기독교회 자리로 성곽이 지났다. 이어진 창덕여중 뒤쪽 담장에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교 담장 너머의 운동장이 옛 프랑스 공사관 자리다. 예스러운 공사관이 사라진 대신, 충정로에 제비처럼 유려하고 날렵한 멋진 대사관이 서 있다. 오로지 가톨릭을 위해 조선과 수교한 그들의 열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처럼 당시 프랑스는 외교나 이익보다, 가톨릭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제국이 아니었단 말인가. 모호하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그 무엇도 아닌, 오래된 사진 속에 아름다운 공사관의 기억뿐이다. 성벽이 없다는 건 침입을 용인했다기보다, 작은 몸부림으로라도 맞섰다고 읽고 싶다. 조선은, 도성 중심이 아닌 이 좁은 서쪽 공간에서 가장 먼저 제국을 '맞아야 하는' 홍역을 치렀다. 방어선이 사라진 자리로 조약문서와 외교문서가 밀고 들어왔다. 성 돌이 사라진 자리를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가 대신 채웠다. 등나무 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성곽은 분명 그 경계로 지났다. 이화외고와 이화여고 사이다. 들어가 보기 어려운 학교 안 길이 평온해 보여, 여기 학생들만큼이나 어여뻐 보인다. 이화여고 교정엔 유관순의 이름 또한 뚜렷하다. 기념관은 물론 재학 당시 손수 빨래했다는 소담한 우물터도 남았단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