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거의 마지막날 을지로 망우삼림에 벨에어 6×12를 맡겨두고 나오던 순간, 마음 한켠이 가벼워졌다. 가장 거대한 판형을 수리대에 올려두고 돌아서는 길. 압도적인 파노라마를 잠시 내려놓은 대신, 주머니 속 작은 금속의 감촉이 또렷해졌다. 로모그래피 Tiger CN200을 머금은 Fujica 350 Flash.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교차하며 즐기는 여행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6×12가 공간을 압도하며 풍경의 숨결을 길게 펼쳐낸다면, 110 규격의 작은 카트리지 필름은 시간을 아주 밀도 있게 압축한다. 그날 나에게 주어진 것은 거대한 장면이 아니라 단 한 시간의 여유였다. 24번의 셔터,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프레임. 한 시간의 산책으론 충분한 분량이다. Fujica 350 Flash는 요란하지 않다. Fujinon 렌즈와 셀레늄 노출계 기반의 자동 노출, 그리고 기계식 셔터. 배터리 없이도 빛이 닿는 순간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셀레늄 노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내 손안의 개체는 여전히 성실하게 바늘을 움직인다. 이 카메라는 사용자를 시험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담백하게 묻는다. "빛은 충분한가?" 35mm 필름을 반으로 쪼개 쓰는 하프프레임 카메라들이 세로 프레임을 강요하는 것과 달리, 110 필름을 쓰는 이 녀석은 태생부터 가로로 길쭉한 시선을 가졌다. 작지만 당당한 가로 프레임. 나는 오히려 이 작은 창으로 거리의 단면을 수평하게 쌓아 올리는 감각이 즐겁다. 한 시간의 을지로 산책 망우삼림을 나서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선의 벽, 열려 있는 유리문, 그리고 분주히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발끝의 방향과 보폭의 속도가 그 사람의 하루를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셀레늄이 빛을 읽고 기계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려 셔터를 누른다. 찰칵.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소리. 이 카메라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리듬으로 숨 쉬며 을지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서자 구수하고 달콤한 간장 냄새가 흘러왔다. 오래된 오뎅집이다. 이미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친 뒤였지만, 후각은 무심하게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긴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 바랜 간판, 손때 묻은 냉장고. 로모 타이거 CN200 필름은 이 풍경을 과장 없이 따뜻하게 받아낸다. 빛이 부족한 골목이라 플래시를 켰다. 펑, 하는 섬광과 함께 빨간 의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필름은 솔직하다. 빛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닿으면 닿는 대로 기록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