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 인형 명인은 왜
'큰 코'를 좋아하는가

하얀 먼지가 눈처럼 내려앉은 작업실, 나무를 깎는 공구 소리가 쉼 없이 공간을 채운다. 마스크 위로 눈만 내민 채 한 남자가 묵묵히 나무와 씨름한다. 칼끝이 스치는 자리마다 거친 나뭇결 속에서 새로운 얼굴이 드러난다. 유난히 코가 큰 목각 인형들. 작업실은 마치 '코 크기 자랑'이라도 하듯 큼지막한 코를 가진 인형들로 가득하다. 50여 년 동안 그는 같은 자리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문지르며 사람의 얼굴을 빚어왔다. 거친 나뭇결에서 표정을 찾아내고, 큼직한 코에 웃음과 해학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담아 넣는다. 손끝에 켜켜이 쌓인 세월은 그대로 인형의 얼굴이 된다. 봄비가 내리던 3월 3일, 나무 향 가득한 작업실에서 목각 인형 장인을 만났다. 코에서 시작되는 생명 작업대 위에는 마치 해부된 신체처럼 조각난 나무 형체들이 놓여 있다. 아직 얼굴이 되지 못한 나무토막, 막 다듬기 시작한 다리, 형태를 갖춰가는 손. 그는 얼굴을 먼저 만들고 이어 다리와 손을 깎아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부분은 '코'다. 칼끝이 오가는 만큼 코에는 표정과 성격이 깃든단다. 작업실 안은 드릴 소리와 나무 가루로 가득하다. 기계음에 몰두한 그는 방문객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다. 한참 뒤 기계가 멈추고 돌아선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코가 참 잘 생겼습니다." 권오복(67세) 작가의 첫 인사다. 그는 얼굴에서 코를 제일 먼저 본다. 그의 세계에서 코는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얼굴의 중심이자 인형의 생명이며, 어쩌면 자신을 닮은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긴 코가 빚어낸 또 하나의 세계 강릉 노암동의 막국숫집 겸 전시장에는 나무의 은은한 향이 감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긴 코를 지닌 목각 인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굴과 표정은 모두 다르지만,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언제나 도드라진 코다. 공간을 가득 채운 인형들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당당히 서서 코를 내세우기도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건네기도 한다. 서로 다른 몸짓과 분위기를 지녔지만 '코'라는 공통된 특징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벽과 바닥, 스탠드 위에 자리한 형상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은 채 조용히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뭇결을 살린 작품들은 앉거나 서 있는 자세도, 코의 각도도, 표정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손 가는 대로, 나무 생긴 대로 만든다"라고 말한다. 억지로 형태를 끼워 맞추기보다 나무가 지닌 결을 따르다 보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피노키오가 태어난다는 설명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