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할 데가 없었는데, 여기 오신 분들은 같은 여자 대리기사라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주소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른 채 배차가 되잖아요. 손님 차를 운전해 가보니 산꼭대기 별장이더라고요. 손님은 만취해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 버렸고, 주변은 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덜덜 떨면서 내려왔죠.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때 순찰차 한 대가 보이길래 달려가 '대리기사인데 이런 곳인지 모르고 왔다, 가는 데까지만 좀 태워줄 수 없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들이 대리기사 차 태워주는 사람들이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계속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며 겨우 가로등 있는 곳까지 왔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장기간 방치되고 고립된 여성이동노동자 문제, 공론화와 해결의 장이 절실하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경남 지역 여성 대리기사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였다. 토론회 말미 방청객 발언 시간이 마련되자, 그동안 혼자 삭여온 여성 대리기사들의 고충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누가 하라고 했냐" 돌아오는 말 토론자로 나선 26년 차 여성 대리기사 정순옥 씨는 여성 대리기사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이런 말을 들어왔다고 했다. "누가 그거 하라고 등 떠밀었나. 하기 싫으면 그만둬라..." 그 말을 곱씹던 그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대리운전을 해본 사람만이 아는 대리기사들의 노동환경은 처절하다. 체감상 영하 10도, 20도에 가까운 겨울 새벽의 혹한 속에서, 또 고통스러운 열대야 속에서 밤새 걷고 뛰어야 한다. 특히 여성 대리기사들은 운전석 바로 옆에 만취한 남성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일을 마친 뒤에는 인적이 끊긴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 나와야 한다. 가정집을 방문하는 가스검침원, 정수기 코디, 요양보호사 등 여성이동노동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방문한 가정에서 남성과 홀로 대면해야 하지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과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직종이 등장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앞서 열린 여성이동노동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성평등위아 오다빈 활동가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고립돼 홀로 일하는 여성 대리기사와 요양보호사, 가스검침원, 정수기 코디 등 방문직 여성이동노동자들은 성추행을 포함한 각종 폭력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습니다. 남성이 있는 밀폐된 공간에 혼자 들어가 일하는 구조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이동노동자들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피해를 호소할 곳이 없다. 늘 자극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에 비해 정책적 보호 노력도 부족하다. 문제 해결 없이 장기간 고립이 이어지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경향만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문제 해결은 물론 현안 파악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