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수요일, 그날은 평범한 오후였지만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골목은 평소와 달랐다. 갑작스러운 '차량 통제'라는 팻말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뒤이어 큰길에서 갈라진 좁은 길목으로 소방대원과 등에 '의용소방대'라 쓰인 주황색 조끼를 입은 분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그분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도로변에 세워진 소방차들을 보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불이 났나요?" 다급하게 묻는 내게 의용소방대원 중 한 분이 친절하게 답했다. "불이 난 게 아니라 훈련 중이에요." 긴급 출동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해 강제 처분하는 '실전 훈련'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만히 보니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왜 하필 이 좁은 골목에서 훈련을 하는 걸까? 궁금해서 물었다. "이곳이 바로 '소방영웅길'이거든요." 의용소방대원의 답변에 내가 걷는 이 길이 아주 특별한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모르고 지나쳤다. 이곳이 순직 소방관들을 기리기 위해 '소방영웅길' 명예도로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파트 앞 큰길에서 좁은 길로 내려오면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가의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운동장에 '긴급 출동 방해 차량 강제 처분 실전 훈련'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서울고은초등학교를 몇 번이나 다녀갈 일이 있었는데도 '소방영웅길'을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서 언덕길 초입에 세워진 안내판에 적힌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은 2001년 3월 4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제동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안에 아들이 있다"는 다급한 주민의 외침 소리에 망설임 없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2층 창문으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순간, 건물이 무너지면서 화재의 잔해 속으로 아홉 분의 소방관이 매몰되었다. 그중 여섯 분은 끝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대한민국 소방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이름, '홍제동 화재 참사'로 기록되었다. 순직한 여섯 분의 희생으로 우리나라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근무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이 입고 있던 옷이 방수복에서 방화복으로 바뀌고, 장비가 대폭 보강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그 위험한 터전에 제대로 된 장비 없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처우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명예 길이 조성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일이 지난 2024년 3월이었다. 3월 4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이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도 왠지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