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드론 교관들이 방어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다음 주 중동에 파견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키이우를 방문한 롭 예턴 네덜란드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전문가들이 현장에 도착하면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이는 “양측 모두에게 기회”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 대가로 미국산 지대공 유도미사일 체계 패트리엇(PAC-3) 지원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3일 중동 국가들이 패트리엇을 갖고 있지만 수백 대의 샤헤드 드론에는 효과가 없다고 짚으며 “패트리엇 미사일을 주면 우리가 드론 요격기를 주겠다. 이건 공정한 교환”이라고 제안했다. 이튿날 연설에서는 “샤헤드 드론을 막아내는 우크라이나의 전문성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섰다”며 지원 의사를 거듭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 국방부와 걸프 국가 최소 1곳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산 드론 요격기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이란제 샤헤드 드론을 바탕으로 개발한 자폭공격용 드론으로 우크라이나를 공습해왔으며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요격용 드론 ‘스팅’을 개발했다. 젤렌스키의 생존 전략…전쟁경험 외교 자산화 젤렌스키 대통령이 드론방어기술을 상호 교환재로 상정하고 이란 전쟁에 발언권을 행사하려 하는 것은 국제사회 관심이 중동에 쏠린 데 따른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집중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중동 위기를 오히려 자국의 협상 카드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4년 드론전쟁의 피로를 역으로 ‘외교 자산화’하며 자국의 쓸모를 입증,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고 장거리 미사일 등 무기 지원을 끌어내려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피로 얻은 생존 기술을 외교의 언어로 바꿔 들기 시작한 것이다. 6일 블룸버그도 “이란과의 갈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심을 흡수하면서, 국제사회 의제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는 젤렌스키의 지렛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전쟁경험이 안보 상품으로…잔혹 국제질서 전쟁 하나가 다른 전쟁의 보급선과 외교 공간을 흔드는 구조가 노골화하고 있다. 중동에서 포성이 커질수록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큰 전쟁의 그림자에 가려질 뿐이다. 미국이 이란과의 충돌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미국산 방공 미사일 공급은 어려워졌다는 로이터통신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는 평화를 관리하는 질서가 아니라, 여러 전쟁이 서로를 밀어내고 이용하는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이란 전쟁 확산으로 각국이 더 강경한 내적 결속을 택하면서, 협상과 중재의 공간은 더 좁아졌다. 미국은 한 전구의 방공 수요를 다른 전구의 부족과 저울질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전쟁경험은 비극의 기록인 동시에 거래 가능한 자산이 된다. 우크라이나가 잊히지 않기 위해 전쟁경험을 외교 자산으로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중동에 드론 방어 전문가를 보내겠다고 제안한 장면은 현재의 냉혹한 현실을 압축한다. 결국 그의 제안은 ‘우리를 잊지 말라’는 지정학적 신호에 가깝다. 전쟁은 더 이상 국경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 한 나라의 생존법은 다른 나라의 안보 상품이 되고, 한 전선의 격화는 다른 전선의 침묵을 부른다. 젤렌스키의 협상 카드는 잔혹한 21세기식 국제질서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