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난 지 4년, 결혼 40주년 맞아 아내에게 쓴 편지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지금 몇 페이지쯤을 살고 있을까. 사실 그 책이 몇 페이지로 엮였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지막 장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내 아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볼 테니. 오악사카에 도착한 날이 1월 18일이었으니, 3월 5일로 49일째이다. 우리는 처음 짐을 푼 현재의 호스텔을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다. 지난주, 함께 오래 머물던 몇몇 여행자들이 떠난 뒤, 우리는 3개월째 묵고 있는 애틀랜타 출신 버드 씨 다음의 최장기 투숙객이 되었다. 오악사카에는 온갖 종류의 숙소가 넘쳐나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건물은 오래 되었어도 공간은 넉넉하다. 중정을 비롯한 공용 공간이 넓어서, 어느 책상에 앉더라도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도심에 자리한 덕분에 시내 어디든 걸어서 닿을 수 있고, 주변에 큼지막한 시장이 여럿 있어 장기 체류자에게 식재료 구입의 부담이 없다. 이 도시에서 주변 마을로 향하는 버스는 목적지마다 터미널이 제각각인데, 그 터미널들이 마침 인근에 모여 있어 어디든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곳을 장기 체류지로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진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결함이다. 각 층마다 청소 담당자가 배치되어 있어 매 시간 쓸고 닦는다. 더욱 결정적인 다른 하나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다채로운 사람들이다. 스물 초반부터 팔순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삶의 결이 저마다 다른 이들이 이 공간에서 교차한다. 주변 마을로 나서지 않는 날이면, 나는 호스텔 안에서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단 한 권도 같은 문장이 없는 여러 권의 인터랙티브 책을 탐독하는 셈이다. 삶의 무게를 줄여준 것은 '감사'와 '베풂' 도착한 첫날부터 유독 눈길이 머문 사람이 있었다. 게스트가 아니라, 우리 방이 있는 층을 도맡아 관리하는 여성이었다. 출근부터 퇴근 시까지 한시도 소홀함이 없었다. 야무진 베딩은 물론, 공용 화장실 청소는 하루에 세 번씩 한다. 이동할 때는 늘 종종걸음이다. 그 덕분인지 벌레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한다. 그녀의 이름은 로시오 마르티네스(Rocio Martinez), 두 손녀를 둔 쉰아홉 살의 여인이다. 어제는 아내가 토르티야를 사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내일 제가 오악사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큰 숯불 토르티야를 가져다드릴게요."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큰 토르티야를 내밀었다. 틀라유다(tlayuda)에 쓰이는, 지름이 40센티미터는 족히 될 법한 크기로 숯불에 구워 바삭하게 익힌 것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