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신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고, 그 이후 집안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어머니는 공장 식당에서 오랫동안 밥을 지으셨지만, 무릎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그마저도 그만두셔야 했다. 병원에서는 정기적인 치료와 주사, 운동을 권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치료비며 약값, 재활을 위한 장비 비용은 매달 집세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수능도, 입학원서도, 친구들과의 졸업사진도 없이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게 빠른 선택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공부보다는 일이 먼저였으니까. 그 뒤로 나는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봤다. 편의점 야간 근무, 막노동, 설거지, 퀵서비스, 중고거래 대행, 행사 알바까지. 몸을 쓰는 일이라도 성실히 하면 뭐라도 남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달라서 돈도 들쭉날쭉했고, 예측 가능한 미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말했다. "배달하면 괜찮게 벌 수 있어. 오토바이만 있으면 돼." 플랫폼 앱을 깔면 바로 일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처음엔 단순히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앱을 켜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배달지로 가져다주면 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금방 깨달았다. 이 일은 단순히 음식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함께 실어 나르는 일이라는 것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오늘도 문 앞에 서는 사람 나는 저녁에서 새벽 시간대에 주로 배달한다. 도시가 조용해질 즈음, 배달은 다시 분주해진다. 도로는 어둡고, 눈은 침침하며, 손끝은 얼어붙는다. 그러나 앱 알림은 쉴 틈 없이 울린다. "빠른 배달 부탁드립니다." "음식 안 식게 해주세요." "벨 누르지 마시고, 노크 세 번만 해주세요." 모든 요청을 따라가려면, 마치 내가 로봇이 된 기분이다. 나는 늘 신호를 지키며 운전한다. 사고가 날까 봐 겁이 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다치면 나를 돌볼 사람도, 대신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신호를 지키고 제시간에 도착해도 욕을 먹는다. 배달이 늦다고. 한 번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비를 입었지만 바지는 이미 젖어 있었다. 도로는 미끄럽고, 시야는 흐렸으며 음식은 찌개였다. 살얼음처럼 미끄러운 커브를 돌아 겨우 도착한 집 문 앞에서 고객은 음식 봉투를 열어보더니 말했다. "국물이 조금 샜네요. 안 먹을게요. 환불해주세요." 그리고는 더이상 말도 없이 문이 닫혔다. 멍한 순간이 지나가고 마음을 추스른 뒤, 욕설을 듣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헬멧을 쓰고 출발했다. 이 일은 감정의 상처를 안고도 웃어야 하는 직업이다. 실수가 없어도 "죄송합니다"를 먼저 말해야 하고, 욕을 들어도 침착하게 "네, 알겠습니다"를 반복해야 한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죄송합니다"를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