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믹스커피 50잔... 그가 내게 가르쳐준 것

교육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정해진 답,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답, 표준화된 답을 눈치 빠르게 잘 맞추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점이다. 좋은 답만큼 좋은 질문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챗GPT는 질문을 잘하면 답도 잘하고, 질문이 엉성하면 답도 엉성해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내면 답도 잘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를 쏙 빼닮은 모습을 지니긴 했다. 커피 역사 분야의 첫 책을 출판한 이후 커피 역사 강연 혹은 강의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강의는 대학, 평생교육관, 시민대학 등에서 수강생을 사전에 모집해 여러 주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라면, 강연은 박물관, 서점, 카페, 독서 모임, 백화점, 기업 등에서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진행하는 저자 초청 행사나 특별 이벤트를 말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강연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미국 뉴욕에서 1995년 교육학자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시작한 '클레멘트 코스'의 이념을 이어받은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였다. 클레멘트 코스는 노숙인과 마약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통해 자존감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반응을 얻었다. 같은 취지로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에 문을 열었다. 노숙인들을 만나는 강연을 앞두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주최 측의 권고로 서울역에서 내려 강연장이 있는 숙대입구역까지 걸었다. 불과 1킬로미터 남짓 짧은 거리였지만 저녁 무렵의 이곳 갈월동의 풍경은 우리의 현대사 70~80년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뒤돌아보면 서울역 맞은편의 고층 빌딩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연탄구이집, 세탁소, 인력센터, 여인숙, 장애인보호센터 등이 늘어서 있다. 왼쪽으로는 듬성듬성 서 있는 전봇대에 의지해 잠들어있는 사람,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는 사람들, 주변 식당에서 무언가를 받아 들고나오는 사람,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나는 이곳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걷고 있었다. 큰길 맞은 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자동차 판매점, 은행, 치킨집, 병원 등 일상적인 도시 모습과 그곳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모두 무심해 보였다. 지하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도착한 분들과 같이 도시락을 받아 앉았다. 대부분 등산용 배낭이나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남성분들이 많았지만, 여성분들도 더러 보였다. 도시락에는 밥과 생선구이, 그리고 나물 두 종류와 국이 들어있어서 먹을 만했다. 내가 오랫동안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영위원장을 경험하며 맛본 분당 지역 학교 급식보다 못하지 않았다. 물론 도시락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함께 식사하는 노숙인들이었다. 이분들은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무슨 말을 시켜야 할까, 이분들에게 나의 말은 위로가 될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음식이 맛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앞에 있던 분이 가끔은 치킨도 나오고 불고기도 나온다고 하며 웃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앞에 있던 분이 일어서며 커피 마시겠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빈 도시락과 자신의 빈 도시락을 가져다 쓰레기통에 넣더니 한쪽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다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커피가 앞에 있으니 말할 거리가 생겼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지, 커피 마시면 잠은 잘 오는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질문이 이어지고 대화도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피였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둘러보니 참석자들이 꽤 많았다. 쉰 명 정도는 돼 보였다. 나의 편견이 작동했다. 하루하루 먹고 자는 게 힘든 노숙인들이 이렇게 인문학 강의에 관심이 있다고? 커피 역사 강의라는 것은 알고 왔을까? 공짜로 주는 밥 때문에 왔겠지? 내 강의를 알아들을까? 혹시 재미없다고 졸지는 않을까? 끝까지 듣지 않고 나가는 분들이 많겠지? 강연을 마치면 질문은 할까? 이런 걱정에 가까운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