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매일 밤마다 찾아와서 인원 확인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로즈(가명)는 설마 했다. 여자가 열다섯이나 함께 사는 숙소에, 그것도 매일 밤 10시 넘어서 삼십 대 초중반의 남자가 찾아온다고? 긴급한 이유가 있어서 어쩌다 들를 수는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밤마다 여자 숙소를 찾아오는 남자는 자신을 "Sir(써)"라고 부르라며 계절노동자 관리자 노릇을 하던 브로커 A였다. 굴까기 작업장에서 일일 할당량을 채우려면 손을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방문은 '이해할 수 없는 관리'였다. 새벽 2~3시에 다시 일어나야 하는 계절노동자들에게 밤 10시는 막 단잠에 들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로즈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A가 몇 명이 누웠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이사, 달라와, 따뜰로..." 따갈로그어로 '하나 둘 셋...' 머릿수를 헤아리는 순간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여자들이 빽빽하게 자고 있는 숙소에 아무렇지 않게 젊은 남자가 밤마다 드나드는 사실에 점차 익숙해졌지만, 불이 꺼지면 CCTV 불빛이 여전히 깜박인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불쾌함은 어쩔 수 없었다. "카메라가 켜져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불을 끄고 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계절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 거실에는 CCTV가 달려 있었다. 누가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 A의 허락 없이 밖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모두 그의 감시망에 놓여 있었다. 지난 설을 앞두고, 로즈는 단지 마트에 혼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단독행동을 할 경우 '필리핀으로 추방시켜 버리겠다'는 말을 들었다. 8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입국했는데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이는 로즈에게는 미래를 쥐고 흔드는 협박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버스를 타고 고흥읍내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혼이 난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고, 돌아와 잠든 순간까지 감시당하는 생활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문밖을 한 번 나설 때마다, CCTV에 A의 눈이 따라왔다. 심지어 A는 누가 어떤 포스팅을 올리는지 개인 소셜미디어까지 살펴보았다. 동료들은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도록 학습됐다. "우리를 사람으로 봤는지 모르겠어요.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손가락은 마비되고, 손등까지 까졌지만, 하루 할당량을 채울 수 없었어요. 할당량을 채우려고 숙소에서 칼을 들고 연습까지 했어요. 그렇게 일해도 근로계약서에서 약속한 최저임금도 못 받고, 감시 속에 살았어요. '필리핀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은 '내 말 안 들으면 네 삶을 없애버리겠다'는 말처럼 들렸죠." 두 개의 근로계약서, 보호 목적이 아닌 갈취 수단 입국 전부터 이상한 기색은 곳곳에 있었다. 브로커는 근로계약서를 두 명의 고용주와 작성하게 했다. 왜 두 개를 쓰는지, 왜 서로 다른 내용이 있는지 정확히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이건 한국 정부용, 이건 회사에서 필요해서"라는 말만 돌아왔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로개시일 전에는, 사용자가 노동을 시켜서 안 되고, 계절노동자도 노동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계절노동자들은 그 시간에도 일을 했다. 근로개시일보다 열흘이나 빠른 입국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계절노동자들을 일찍 입국시킨 브로커는 인력사무소 사장처럼 계절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하며 돈을 벌었다. 실제로 로즈의 첫 달 급여 내역서에는 네 군데 사업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사업주라도 근로계약서의 굴까기 작업장만 아니라 유자 농장에서 일을 시키기도 했다. 어업 계절노동자에게 농장 일을 시키기도 했을 정도로 근로계약은 무의미했다. 그 구조는 강제노동이자 인신매매에 가까운 것이었다. 취업을 알선해 주겠다며 빚을 지우고, 비자와 체류를 빌미로 "말을 안 들으면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는 법이 허용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일을 시키는 것. 브로커와 고용주가 계절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동안, 공공기관은 뒤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