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3.15 민주의거가 일어난 지 66년이 흘렀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 자유당은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며 경남 마산의 시민, 학생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김주열 마산상고(입학 예정) 학생이 실종됐는데, 4월 11일 마산의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어부의 갈고리에 걸려 발견됐다. 김주열의 눈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었고, 그의 참혹한 주검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마산의 3.15, 서울의 3.17 의거 인간에게 역사의식은 중요하다. 사회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역사의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인생관, 가치관은 크게 차이가 난다. 역사의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떠한 사회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가운데 주체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의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교육이나 독서, 특별한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세대에 따라 역사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도 상이하다.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초의 4·19혁명과 5.16쿠데타, 1980년 5월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2025년 소위 '빛의 혁명'을 겪은 사람은 그 사건에서 촉발된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갖게 된다. 1977년 초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성남고에 입학한 나는 몇 가지 계기를 통해 '4월 혁명'의 세례를 받았다. 4.19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간접 체험과 독서를 통해 4월 혁명에 관한 역사의식을 갖게 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교과서와 선전물을 통해 강제로 주입한 반공 이데올로기, 허위의 역사의식으로 세뇌됐던 10대의 까까머리 학생은 4.19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역사의식을 지닌 청소년으로 거듭나게 됐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국어나 국사, 그 어느 과목의 교사도 4.19를 언급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학도호국단의 일원으로 총검술을 배우던 그 시절엔 오직 반공만이 지고지순의 가치였으며, 교과서 속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는 한국식 민주주의 즉 박정희 독재를 넘어설 수 없었다. 이처럼 권력이 눈과 귀를 가리던 시절 성남고등학교 정문 옆에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기념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3.17 의거탑'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제대로 된 4·19 정신을 배울 수는 없었지만 몇몇 동문 선배 교사를 통해 3.15 부정선거에 맞섰던 선배들의 무용담을 살짝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이 강요되던 유신정권 시절에 제대로 듣지 못했던 3.17의거의 활약상은 그 후 50년 가까이 흐른 뒤 접한 < 3.17 민주의거 65년사 >(인물과사상사, 2025)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업에만 전념하던 성남고 학도들은 3.15 부정선거 뒤 삼삼오오 모여서 "불의가 정의를 짓밟는데 보고만 있어야 하나?" , "우리나라가 비민주국가의 나래로 떨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목숨을 던져 자유당 독재정권에 항거하자" , "마산 학생 살인사건에 책임을 묻자"며 울분을 토해내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 3.17 민주의거 65년사 >에 나오는 내용을 적어본다. 성남고 4백여 학생 "부정선거 다시 하라" 외치며 시위 선언문 작성, 플래카드 제작, 구호문 전단지 작성, 선언문 낭독자 지정 등 준비할 사항들이 많았는데, 선언문과 구호는 운영위원장(박효성)이 학생회 임원들의 협조를 받아 현 시국 상황에 맞는 내용으로 작성하기로 하였다. 결국, 플래카드는 "의에 살고 의에 죽자", "백만학도여 총궐기하자"고 광목천에 쓰고, "경찰은 마산 학생 사살사건을 책임져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등의 구호를 만들었는데 구호문(전단지)은 학생과 시민 등에게 뿌려야 하기에 많은 양이 필요했다. 플래카드와 구호 전단지는 극비리에 만들어야 하므로 등사나 인쇄를 할 수도 없어서 결국 손으로 직접 쓰기로 했다. 3월 17일 오전 수업 시간 중에 공책을 잘라 여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쓰도록 했으며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열심히 썼다.(124~125쪽) 이렇게 교훈 "의에 살고 의에 죽자"를 적은 플래카드와 전단지를 준비한 학생들은 3월 17일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영등포 영보극장 앞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집회 시작 후 20분 정도 지나 도착한 경찰은 공포탄 3발을 쏘고 방망이를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진압을 시작했는데, 참여 학생 400여 명 중 100여 명이 경찰서로 연행됐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