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초, KBS가 국민에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장애인 차별이 1위를 차지하리라 예상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 이동권의 제약, 고용의 벽, 시선의 폭력을 생각하면 그것이 마땅해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국민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은 차별은 학력과 학벌 차별이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장애인 차별이 더 심각한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며, 그로 인한 불이익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학력 차별을 그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라 응답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력과 학벌에 의한 차별이 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차별의 그늘에서 좌절과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리얼미터의 2024년 조사는 이 체감을 숫자로 확인시켜 준다. 국민의 74.7%가 학벌로 인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85.2%가 출신학교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한국리서치의 교육 인식 조사에서는 87%가 대학 서열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이 수치들은 학벌 차별이 일부의 불만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 국민의 공통된 경험임을 말해준다. 학벌 차별,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오판 국민들은 이 차별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체념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출신학교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려면 어느 정도 학벌을 참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인 양, 기업의 정당한 권리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다. 많은 국민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채용에서 출신학교와 학력으로 차별하는 것은 이미 불법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고용정책기본법 7조 1항이 개정되어 출신학교에 의한 차별이 금지되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는 학력에 의한 차별까지 금지 조항에 추가되었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출신학교와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원칙에 합의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 법률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차별을 금지한다고 선언해 놓았으나, 위반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다. 상징적 선언에 그쳤을 뿐, 현실의 채용 관행을 바꾸는 힘을 갖지 못했다. 기업들은 여전히 이력서에 출신학교란을 두었고, 서류 전형에서 학교 이름으로 지원자를 걸러낸다. 법은 있으되 지켜지지 않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이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2024년 상반기에 국내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매출 규모가 큰 순서대로 기업을 정렬할 때 상위 100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조사한 결과는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채용 공고가 뜬 169개 기업 중 출신학교 정보를 요구하는 곳이 99.3%에 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서는 93.7%였는데, 10년 사이 5.6%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기업들이 입으로는 "스펙보다 역량"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출신학교란을 더 꼼꼼히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는 실효성 있는 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시민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20일, 국회에서 출신학교·학력 채용차별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가 열렸다. 311개의 시민사회 단체와 풀뿌리 조직이 참여했고, 400명의 시민들이 국회를 찾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 최교진 교육부장관 등 3명의 국무위원과 우원식 국회의장을 포함한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지지와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간명하다.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4조 3항에 '구직자 본인의 출신학교와 학력' 항목을 추가하여, 채용 과정에서 이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왜 차별 금지에 그치지 않고 수집 자체를 막아야 하는가. 정보를 수집하는 순간, 그것이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참고만 했을 뿐 차별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는 내부의 영역에 속한다. 차별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후 통제가 아니라 사전 차단이다. 출신학교는 능력의 증거가 아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