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향기가 안개에 갇힐까 두렵습니다"

충남 청양군 남양면 온직리에는 초록빛 생명력 가득한 차산이 있다. 고향 산에 야생 녹차를 심어 차 재배의 한계선을 중부지방까지 끌어올린 지인이 있다. 아내와 함께 <온직다원>을 일궈온 광효 김기철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30년 넘게 야생 차밭을 일구며 유기농차를 생산해온 그는 요즘 차 농사보다 힘든 일이 생겼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찻잔 속 맑은 물빛처럼 차분하게 담소를 즐겼을 터인데, 청양 지천댐 건설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얼굴은 짙은 찻잎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산기슭에서 야생차를 키우며 유기농을 고집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댐이 들어서서 거대한 호수가 생기면 그 고귀한 차 향기가 안개 속에 다 흩어져 버릴까 봐 밤잠을 설칩니다." 그의 절박한 목소리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평생을 바친 '생태적 가치'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농도 깊은 탄식이었다. 야생차는 하늘과 땅이 주는 기운을 그대로 먹고 자란다. 특히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온직다원에게 댐 건설은 생존을 위협하는 직격탄이다. 차나무는 적당한 일조량이 생명인데, 댐으로 인해 상시 발생하는 짙은 안개는 햇빛을 차단해 차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성분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비단 차 농사뿐만이 아니다. 청양의 주 수입원인 고추와 구기자 역시 습도에 치명적이다. 댐이 만든 인위적인 습한 기후는 병해를 확산시키고 수확량은 급감하며, 겨울철엔 예측 불가능한 냉해까지 불러온다. 김 대표가 수십 년 간 지켜온 자부심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독선적인 지자체장의 막말 논란과 '기후'라는 이름표를 단 낡은 토목 주민들을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이들을 대변해야 할 군수의 태도다. 댐 건설을 찬성하는 군수는 생태계 파괴로 농사를 망친다는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최근 공개된 군수의 지난해 2월 군의회를 대상으로 한 막말 녹취록은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반대하는 군의회 의원을 지칭하며 쏟아낸 고압적인 언사와 막말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이에 대해 김 군수는 최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당초 군의회 의원들이 지천댐 건설 반대 성명서를 내지 않기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감정적으로 격해졌다"라며 "군수로서 표현이 과격하고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 편집자 말). 이는 군민들을 대변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이며 지방 자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독선이라고 김 대표는 분노했다. 행정의 수장이 주민을 설득하기보다 권위로 짓누르려 한다면, 민주적인 공론화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