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6] '동경대전' 등 경전 간행

동학교단의 재정비 작업은 쉽지 않았다. 교조가 참형당할 때 체포된 인사 중 박명여(朴明汝)와 성명 미상의 박씨가 옥사를 하였고, 백사길·강원보·이내겸·최병철·이경화·성일구·박상빈 형제·박명중 숙질·성명 미상의 정(丁)생 등이 유배되었다. 이들은 당시 동학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여기에 이필재의 거사로 많은 동학인이 처형당하거나 투옥되면서 교단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나마 목숨을 건진 인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쉽지 않았다. 최시형은 경전발간을 돌파구로 삼고자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더 늦기 전에 각종 설법내용을 간행하고자 했다. 해월은 '도적(道跡)' 및 '경전(經典)'을 대대적으로 판각(板刻)하여 간행하고자 서둘렀다. 명실공이 '도적과 경전' 그리고 '수행', '의례' 등을 확정하고 간행하여 교단의 면모를 다져나갔다. (윤석산, <해월신사의 생애와 리더쉽>, 29쪽) 모든 종교에는 '경전(經典)'이 있다. 원래는 성인·현인이 지은 책이나 글 또는 불교의 교리를 적은 책을 일컫고, 유교의 교리를 지은 책을 경권(經券)이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이라 부른다. 조정에서 최제우를 처형할 때 그가 남긴 설법집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를 압수하여 불태웠다. 더 늦기 전에 남은 자료를 모으고 생존한 측근들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는 일이 최시형의 과제였다. 뒷날 "동학 교리의 체계화, 동학 조직의 재건과 지역적 기반의 확대, 경전의 집성, 제도와 의식의 확립, 정기적 수련 제도의 실시를 통한 지도자의 양성 등이 그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서는 '동학교리의 집성'과 '경전의 집성'에 대해 살펴본다. 이필재의 '영해봉기' 이후 다시 관의 추적이 강화되자 최시형은 더 깊은 산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그는 이어 제자 강수(姜洙)만을 데리고 태백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동굴 속에 살면서 14일을 나뭇잎으로 연명했다. 어느날 나무꾼의 도시락을 얻어먹었고 계속 나무꾼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이었다. 이때 그의 맏아들은 잡혀가 장사(杖死)되었고 얼마 뒤에는 그의 부인과 작은아들마저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병사했다. 그의 혈통이 끊어짐은 물론, 혈혈단신의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지하에서의 포덕은 결코 그치지 않았다."(이이화, 앞의 책, 259쪽)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