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7] '용담유사', 어떤 내용인가

<동경대전>을 간행하고 교단의 조직을 정비한 최시형은 수운 스승이 일반 백성과 여성들에게 동학사상을 빨리 쉽게 전하기 위해 한글가사체로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를 펴내기로 하였다. 1881년 6월 충북 단양군 남면 천동리 여군덕의 집에 간행소를 차리고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이때 내용 중 '검결'은 삭제되었다. 고종 정부가 최제우를 처형할 때 바로 이 부분도 반역의 이유로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결(劍訣)'은 1861년에 지은 것으로 일명 '칼노래'로 불린다. 남원의 은자암에서 수도를 할 때 득도의 기쁨으로 이 검결을 짓고 '목검(木劍)'을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랴.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즛들어, 호호방방 넓은 천리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로 이어진다. 이 가사는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기도 했다. <용담유사>의 주요 내용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