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확장하는 미국의 극우... '소극적 평화'로는 부족하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 다행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전 세대의 전쟁 경험은 가깝고도 멀었다. 우린 그걸 기억과 잔흔으로 물려받았고, 재현매체를 통해 반복 교육받았고, 분단체제론과 같은 이념으로 접했다. 전쟁은 가까운 과거였지만 지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의 소중함을 몰랐다. 평화라는 말이 비둘기처럼 식상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연합훈련은 매너리즘으로 다가왔다. 김신조가 넘어오고 무장공비들이 출몰했던 어린 시절의 사건들은 까마득한 추억이 되었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침몰 등 북과의 대결 속에서 장병들이 전사한 비극도 전쟁의 위협으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전쟁에 대해 감각이 없었다. 민주주의 제도와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그런 무감각은 공기가 되었고, 평화는 개인과 개인, 집단 사이에서의 관계의 문제로만 남았다. 혹은 내 마음의 평화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평화가 심각히 위협받고 있었다. 아니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연말 시상식에서 서로 축하하고 축하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엄포고문이 발표되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밤을 꼴딱 새우며 새삼 공포를 느꼈다. 아, 총칼을 들었구나, 잡아 죽이겠구나 싶어서 국회 유리창이 깨질 때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토록 허약한 존재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