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제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해 왔다. 강의 말미에 어떻게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요청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이 말을 묻곤 한다. "혹시 경찰서에 가본 적 있으세요?" 그러면 강의실은 조용해진다. '내가 거길 왜 가보지?'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가본 적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쉽게 손을 들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해에 직면하고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생각보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겪은 이 상황이 정말 신고할 만한 상황인지 고민스럽기도 하고, 가해자가 보복을 하진 않을지 두려울 수 있다. 그간 관계를 이어온 상대이기에 '이번만 그런 건 아닐까'하며 기회를 주고 싶기도 하다. 또한 신고를 했지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러 사례를 언론을 통해 들었기에 선뜻 신뢰하기 어렵기까지 하다. 내가 강의 시간을 통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만 도움을 요청해 보자는 의미이기도 하고, 신고를 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누기 위함이기도 하다.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 31번 차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린 사람이 있다. A다. A는 B와 교제하는 동안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부분 불입건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러다 B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시간이 흘러 B가 출소한 후, A를 불렀고 그렇게 폭력은 다시 시작되었다. A는 사용정지된 B의 휴대전화로 여러 번 112, 119에 전화를 걸기도 하였다. 본인의 휴대전화는 이미 B가 숨겼기 때문이다. B는 A를 목을 조르며 수차례 폭행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A의 턱은 찢어져 상하의에 상당한 혈흔이 묻어있었다. 술에 취한 B가 잠든 사이 A는 집에 불을 내고 도망쳐 나왔다. B는 전신 화상 등으로 숨졌다. 그렇게 A는 범죄자가 되었다. 많은 경우, 교제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폭력 피해가 계속되었다면 왜 떠나지 못했는지를 묻곤 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A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를 주변 상황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사건 주택 옆으로 도로까지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고, CCTV 영상에서도 비록 많지 않으나 지나가는 차량도 확인된다. 주거가 밀집한 지역은 아니나 인근에 주거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자체가 외진 곳이라 하더라도 A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혹은 도망쳤다면 '그래도 괜찮을 수 있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다. 소리를 질렀다면 차량에 탄 누군가가, 근처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을 도와주었을 것이라 보며 A가 처한 현실이 아닌, 있지도 않을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A의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의 핸드폰을 빼앗기고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의 폭력이 있었던 상황이다. 그간 공권력의 도움과 지원을 받았지만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을 때, A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탈출'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가'의 여부, 그 자체였다. 당시 사건이 있었던 그날만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벗어나 피해자에게 지속되어왔던 폭력을 하나의 일련의 행위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A에게는 교제하는 5년간 공포의 상황이 누적되어왔기에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 이외의 폭력이 존재했다. 판결문에 기록된 폭력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수회 때리고, 목을 조르고, 숨을 헐떡거리면 놓아주는 식의 폭행이 수회 있었음 - 피해자의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때림 - 눈 부위 폭행으로 인해 망막 손상이 있었고, 현재 시력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임 - 부엌칼을 가지고 와 목에 들이대고, 부엌칼의 평평한 옆면으로 머리 부위를 10회 때리고 오른팔을 긁음. 담뱃불로 피해자 배 부위 3곳을 지져 물집이 생김 또한 A의 경로에는 피해 경험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신고로 도움을 요청하며, 저항하고,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을 통해 3차례 안전조치(스마트워치 지급, 맞춤형 순찰 등)가 시행되었지만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