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면서 동과 동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이 싫었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단지 내 벚꽃나무의 사계절로만 겨우 알아차려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염증이 났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시골로 이사를 온 지 어느덧 12년 차에 접어든다. 그 사이 다섯 살이던 아이는 중학교 3학년, 16살이 되었다. 이사를 가지 않고 12년을 살다 보니 집안 곳곳에 쌓인 묵은 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클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번씩 정리를 해왔지만 쌓인 물건은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아들의 꼬꼬마 시절 만들기는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외동아들이라 모든 것이 소중했다. 시골 주택에 살다 보니 지인들과 가족들이 준 물건도 참 많았다. "아이가 다 컸다"며 보내온 미술용품, 음악 시간에 쓸 악기, 사용하지 않는다며 맡겨놓은 캠핑 장비들까지, 필요한지 아닌지 고민할 틈도 없이 우리 집으로 밀려들었다. 주는 마음이 고마워 하나둘 받아두다 보니 보일러실 겸 창고는 그야말로 물건의 무덤이 되었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철제 선반을 두 개나 들여놓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꼴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 체력이 바닥나 집 안에서 에너지가 빠져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주말에도 캠핑을 가기엔 집이 주택이라 마당에서 놀면 되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며 물건은 늘어만 갔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살면서 부자로 살진 않았지만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왜인지 자꾸만 물건을 쟁여놓는 습관이 생겼다. 안락해야 할 집은 어느새 짐에 둘러싸인 공간이 되었다. 혼자 치우려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버릴 물건을 분류하다 보면 결국 다시 옷장과 찬장으로 되돌려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동생이 도와줘도, 정리수납을 잘하는 친구가 와도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결국 모르는 사람, 그것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업체가 있었다. 1톤 트럭 한 대에 실릴 만큼의 폐기물을 모조리 처리해준다는 안내였다. 처음엔 "우리 손으로 버리기 힘든 물건 몇 가지만 도와달라"는 마음이었지만 욕심이 조금 생겼다. 마당에 우후죽순으로 자란 나무도 가지치기가 필요했고, 집 안 정리도 함께 요청했다. 약속한 날짜, 18일아 바로 그날이었다.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여섯 분이 도착했다. 집 안을 맡을 여성 세 분, 마당과 바깥을 맡을 남성 세 분이었다. 아들 등교를 도와준 뒤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창고 담당자는 모든 물건을 바깥으로 빼기 시작했다. 아이 손때 묻은 장난감부터 바람 빠진 자전거까지, 온갖 물건이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렇게 많은 것을 쌓아두고 살았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모르는 분들 앞이라 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버릴지 말지를 1초 만에 결정하며 일을 빠르게 진행했다. 주방에서 또 나를 불렀다. 돌잔치에서 받은 기념품 수건과 컵들이었다. 다시 쓸 일이 없는 물건들. 나는 고민 없이 버릴 것을 골랐고, 쓸 만한 것들은 한 통에 모았다. 마당에서는 오래된 어린이 수영장 덮개와 미끄럼틀이 나왔다. 먼지와 거미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일부는 삭아 가루처럼 부슬부슬 떨어졌다. 이런 걸 끼고 살았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면서도 지금이라도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