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부쩍 길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20일 오늘이 춘분(春分)이네요. 이제부터는 낮이 조금씩 밤의 영역을 잠식하며 길어지겠지요. 사실 춘분은 단순히 시계 바늘이 낮과 밤을 정확히 이등분하는 날이 아닙니다. 차갑고 어두운 기운의 지배가 끝나고, 땅 밑에서 끓어오르던 뜨겁고 밝은 기운이 마침내 지표면을 뚫고 승리를 선언하는 역동적인 '역전'의 날입니다. 밖에 나가 살펴보니 새순들이 움트고 있었어요. 나무들은 겨울 동안 비축하고 있던 힘을 온통 새순 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 그들의 모습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떤 것은 아기의 주먹처럼 동글동글하게 말려 있고, 또 어떤 것은 세상의 공기를 먼저 탐색하려는 듯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죠. 겉으로 보기엔 정적인 나무들이지만, 그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액이 쉴 새 없이 흐르며 생명의 폭발을 준비하는 치열한 역동성이 느껴졌습니다. 얼음이 다 녹은 저수지의 비단잉어들도 활기차게 움직이며 큰 입을 뻐끔거립니다. 이맘때면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중국 항저우의 서호 언덕 위로 달려가기 마련입니다. 바로 춘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채엽하기 시작하는 서호용정(西湖龍井) 때문입니다. 서호용정은 중국의 '10대 명차' 중에서도 늘 첫손에 꼽히는 차입니다. 청나라 건륭제가 항저우 사봉산 아래 열여덟 그루의 차나무를 '어차(御茶)'로 봉했다는 기록은 유명하지요. 용정차의 가장 큰 특징은 '사절(四絶)', 즉 빛깔이 비취처럼 푸르고, 향기가 우아하며, 맛이 시원하고 달며, 모양이 아름답다는 네 가지 절대적인 미덕에 있습니다. 200°C '불의 기운'을 견뎌낸 차 춘분 무렵 따는 용정은 청명(淸明) 전의 차라 하여 '명전차(明前茶)'라 부릅니다. 겨우내 응축된 에너지를 품고 돋아난 첫 싹은 그 희소성 때문에 예부터 '금값'에 비견되곤 했지요. 이어 곡우(穀雨) 전의 '우전차(雨前茶)'가 그 뒤를 잇습니다. 명전이 이슬처럼 섬세하고 단아한 맛이라면, 우전은 조금 더 잎이 자라 맛이 진하고 기운이 뚜렷해집니다. 보통 차 전문가들은 이 여린 명전차를 다룰 때 극진한 예우를 갖춥니다. 찻잎이 익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70~80°C 정도로 식힌 물을 조심스레 붓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지죠. 하지만 제가 아는 서호용정의 진면목은 그 정형화된 틀 너머에 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